by안재만 기자
2010.12.20 14:40:43
[업데이트]그룹 "승자의 저주 막기위해 2조원 유증 추진"
현대건설 인수 SPC로 활용..투자자는 `미정`
기업규모 감안시 현실성 높지 않다 지적도.."조건 따져봐야"
[이데일리 안재만 기자]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유상증자 카드`를 빼들었다. 현대그룹은 20일 자본금이 33억원인 현대상선(011200) 프랑스법인이 2조원대 유상증자를 실시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으로부터 1조2000억원이나 빌리면서 `승자의 저주` 가능성이 제기된데 따른 후속 조치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의 자본금이 33억원에 불과해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설령 추진된다 해도 투자배경이나 조건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그룹은 20일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이 수조원대의 유상증자를 추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현대그룹의 자금난 의혹을 불식시키겠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은 이후 유상증자 규모에 대해 "2조원 가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 관계자는 이와 관련, "현대그룹 컨소시엄이 외국계 전략적 투자자(SI), 재무적 투자자(FI)들과 접촉 중"이라며 "이들로 하여금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의 유상증자에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증자에 참여할 SI나 FI 후보들이 누구인지, 유상증자의 조건 등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현대그룹은 이 유상증자 대금을 현대건설 인수전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에서 받은 대출금 1조2000억원과 함께 그룹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집행할 계획이다.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이 실제로 유상증자를 통해 2조원대 자금을 조달할 경우 대규모 대출과 이자부담 등에 따른 유동성 리스크는 그만큼 줄어들 수 있게 된다. 그룹 관계자는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의 유상증자 자금을 현대건설 인수자금에 사용하면 차입금 의존 부담이 그만큼 줄어든다"면서 "이렇게 되면 승자의 저주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또 "대출 방식에 문제가 있어서 대출을 유상증자로 바꾼 것은 절대 아니다"라며 "프랑스법인에 투자하겠다는 투자자들이 있어 일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의 자본금이 33억원에 불과하다는 점. 이 때문에 이날 현대그룹 발표의 `실현 가능성과 진실성`에 대해 다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이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에 투자하는 명분이 뚜렷하지 않다"면서 "유상증자 참여의 목적이나 배경도 불확실하지만, 자본금이 30억원대인 회사가 수조원을 조달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만약 업황이나 현대그룹 성장 가능성을 고려한 선택이라 해도 현대상선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며 "프랑스법인에 투자한다면 투자 배경이 뭔지, 조건이 어떤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측은 프랑스법인을 특수목적회사(SPC)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대규모 M&A에서는 투자자들이 SPC를 통해 M&A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현대그룹 역시 프랑스법인의 실제 자산이나 법인규모가 미미해 이를 해외투자자들이 참여하는 SPC로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이 이미 현대그룹 컨소시엄 멤버로 포함돼 있기 때문에, (프랑스법인이 유상 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은) 컨소시엄 멤버변경에 따른 채권단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그룹이 `승자의 저주` 불식이라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시장에서는 대규모 유상증자 추진의 배경이 여전히 불명확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정확한 진의를 파악해야겠지만 아마도 소송을 감안한 움직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시장 관계자는 "현대그룹은 유상증자 계획을 밝히는 방식으로 `우리는 자금이 충분하다`는 걸 강조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