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앞날은)⑤행정도시냐 과학도시냐

by윤진섭 기자
2009.09.28 14:35:53

참여정부 "6개 주요도시기능 중심 자족능력"
세종시 역할 재정립 추진..과학도시 유력대안

[이데일리 윤진섭기자] 세종시의 자족기능이 화두다. 여권이나 야권 모두 세종시를 자족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자족기능 강화 뒤에 숨은 의도다. 야권은 여권이 행정기능을 줄이거나 빼는 것을 전제로 자족기능 확대를 말한다고 의심한다. 
 
야권은 세종시의 당초 마스터플랜을 충실히 이행만 해도 자족기능에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다만 보완하는 차원이라면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자족기능 보완과 함께 당초 계획 변경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와 관련, 권도엽 국토해양부 차관은 지난 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지난해부터 세종시에 자족기능을 보완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며 "자족기능을 보완하기 위한 연구가 완전히 정리되면 필요한 계획 변경이 있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해 세종시의 역할과 기능 재정립 가능성을 시사했다.



참여정부는 세종시의 자족도시 마스터플랜을 짜놨다. 일명 `행복도시 자족성 확보방안 용역 보고서`다. 참여정부가 구상한 자족기능 방안은 세종시를 6개 주요 도시기능으로 나눠 자족 능력을 갖추도록 한 것이다.
 



6개 기능은 ▲중앙행정 ▲문화·국제교류 ▲도시행정 ▲대학·연구 ▲의료·복지 ▲첨단 지식기반이다. 또 마스터플랜에는 6개 기능에 맞는 총 21개의 산업은 물론 산업유치에 따른 고용 인원 등도 포함돼 있다.

참여정부는 세종시에 우선 유치할 제조업으로 출판인쇄 및 기록매체복제업, 영상 음향 통신장비, 의료·정밀, 과학기기, 차세대 전지업·사무업 등을 꼽았다. 이 같은 산업 유치를 위해 99만1740㎡(약 30만평)의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키로 했다. 여기에 고용되는 인구는 1만7000명으로 추산했다.
 
정보산업, 금융, 문화산업 등의 활성화를 위한 행복도시 비즈니스파크 개발 방안도 눈에 띈다. 비즈니스파크는 도심형(6만6116m²), 부심형(19만8348m²), 문화클러스트(9만9174㎡)로 나눠 조성되며 이곳에 수도권 이전 대기업 본사와 다국적 기업을 적극 유치한다는 게 참여정부의 복안이었다. 비즈니스파크를 통해 약 7만7000여명의 고용 유발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대학·연구 및 의료·복지 부문도 자족기능의 중요한 축으로 꼽았다. 대학교육 기능 수요 및 유치 방안에 따르면 종합대학교 신설 및 유치의 일환으로 충청권 국립대학의 통합 대학 유치, 서울대학교의 제2캠퍼스 유치, 신설 국립대학교 유치 등이 거론됐다. 

의료 복지 분야는 오송생명의료 단지와 연계해 우수 종합병원 및 실버타운 사업에 집중해 약 1만3000명을 고용한다는 계획이 제시돼 있다. 이를 위해 16만5000㎡(5만평)~33만㎡(10만평) 규모의 의료산업클러스터 1곳과 33만㎡ 실버타운 복합단지 2곳을 조성키로 했다. 



참여정부가 세종시의 마스터플랜을 짰지만 구체적인 액션 플랜은 정권 교체와 함께 MB정부의 몫이 됐다. 서울시장 재직 당시 행정도시 추진에 반대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세종시 원안 추진을 공약하면서 행정도시 축소설을 부인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를 통해 올 6월 말까지 세종시 자족기능 보완방안을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까지도 명쾌한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 세종시의 대안으로 과학비즈니스벨트가 거론되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행정 기능은 축소하고 자족기능만 보완하려는 여권의 기류와 무관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세종시의 유력 대안으로 검토되는 게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다.

특히 정운찬 총리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세종시의 자족기능과 관련해 "과학연구기관, 비즈니스 관련 기관, 대학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하면서 `세종시=과학비즈니스벨트`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2015년까지 3조5487억원을 들여 기초과학연구원과 초대형 연구시설인 `중이온 가속기`를 설치하는 게 핵심이다. 올해 초 종합계획이 마련됐으며, 입지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 상정된 관련 특별법이 통과되면 4개월쯤 뒤에 정해진다. 정부는 당초 특별법이 연초에 처리되면 6월께 입지를 포함한 기본계획을 확정할 계획이었지만 국회에서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추정치에 따르면 벨트가 만들어져 연구개발(R&D) 중심 기업 511개가 유치되면 2029년까지 20년간 해당 지역경제가 누릴 생산·고용 유발효과는 각각 212조7000억원과 136만1000명에 이른다. 
 
세종시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로 전환하는 것과 동시에 아예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패키지 형태의 지원인 셈이다.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될 경우 토지 임대료 인하 및 세 감면 등의 인센티브가 법적으로 보장돼 기업 유치가 수월해 진다. 



하지만 이 같은 세종시의 자족기능 강화를 위한 대안은 행정기능 축소를 전제로 마련되고 있다는 점에서 야당과 충청권의 반발이 예상된다. 특히 과학비즈니스벨트는 세종시가 `행정타운+과학+교육+산업도시`라는 성격에서 `과학+교육+산업도시`로 변질된다는 점에서 야당과 충청권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영민 민주당 의원은 "과학비즈니스벨트는 세종시의 자족기능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며 "행정도시 기능은 삭제하고 과학도시로 개발한다는 것은 사실상 세종시의 백지화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해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문호를 열겠다는 구상도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많은 전문가들은 기업 및 연구소에 대한 현행 금융·세제 지원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유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도시계획 한 전문가는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 등 3곳의 경제자유구역도 외자 유치가 안 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륙에 위치한 세종시에 외국계 자본이 들어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세종시 자족방안 논란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자족방안 마스터플랜이 마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여권 모두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과학도시나 교육도시 모두 세종시의 자족기능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논의돼야 하는데 마치 세종시의 도시 성격이 그렇게 변해야 하는 것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세종시의 원래 계획을 대폭 축소할 경우 이는 수도권 신도시 개발이나 다름없는 졸속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세종시 자족기능 확보방안의 일환으로 서울대 제2캠퍼스 건립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대 이전은 특히 이공계와 의대 일부를 옮기자는 것으로 구체화 하고 있다.
 
서울대와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교류 협력하면 기업부설 연구소를 유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관련 기업도 끌어올 수 있다는 복안이다.

이우종 경원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도시의 자족기능을 확보하는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교육기관의 유치"라며 "수도권 소재 대학과 외국 유명대학 분교 등을 유치하면 인구 유입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세종시는 고려대, KAIST와 캠퍼스 유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지만 이렇다 할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서울대 제2캠퍼스 건립 방안 역시 서울대 측이 난색을 표하면서 답보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