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강남규 기자
2006.08.24 15:44:38
역대 버블처럼 파열이 불가피
인터넷 거품보다 후유증 클 듯
[이데일리 강남규기자] 미국 부동산 시장이 심상치 않다. 실수요보다는 유동성 풍년 때문에 랠리를 펼쳤던 부동산 시장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긴축으로 풍부한 자금이 줄어들면서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동성 풍년에 따른 부동산 거품과 중앙은행 긴축에 따른 파열 임박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글로벌 차원의 긴축기조가 형성되면서 급등한 현재 부동산 가격이 '상투'라는 분석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최근 부동산 시세가 인터넷 거품 이상의 버블이라고 지적한다. 거품 파열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 인터넷 주식보다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더 많다는 점을 들어 부동산 거품이 파열할 경우 그 후유증은 IT거품보다 더 크고 심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조사한 글로벌 주택시장 거품은 충격적이다. 주택시장의 특성상 전 세계 시가총액을 구하기 힘들지만, 일본을 제외한 미국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선진국의 주택가격 합계는 70조달러 선으로 추정되고 있다.
선진국 주택가격 합계는 최근 5년 사이에 30조달러 선에서 70조달러 선으로 부풀어 올랐다. 이 추정치대로라면, 이 기간 동안 선진국 주택가격의 합계는 선진국의 2006년 상반기 GDP 합계만큼 늘어난 셈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자산가격이 5년 사이에 이렇게 급등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1929년 대공황으로 끝난 1920년대 후반 5년 사이에 미 주가 상승분은 1929년 GDP의 55% 수순이었다. 미 인터넷 주가 상승분도 2000년 GDP의 80% 정도였다.
이코노미스트가 조사기간을 확대해 1997~2005년 집값 상승률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이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평균 주택가격은 244% 올랐다. 아일랜드가 192%, 영국이 154%, 스페인 145%, 오스트레일리아 114% 순이다(). 독일과 일본만이 예외적으로 각각 0.2%와 28% 떨어졌을 뿐이다.
경제정책연구소(CEPR)의 수석 연구원인 딘 베이커는 “역사상 최대 버블이 눈앞에 발생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의 상승률은 한 나라의 실질소득과 가구 증가율에 달려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만을 놓고 볼 때 실질소득은 1997년 이후 해마다 2% 수준 늘어났다. 1953~1973년 당시 실질소득 증가율은 2.8%였다. 최근 미국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하락한 셈이다. 가구 증가율은 1995~2004년 사이에 연간 140만 정도였다. 1970년대 연간 가구 증가율이 280만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5년 동안 미국 주택가격은 해마다 10% 이상 증가했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펀더멘털 요인인 실질소득과 가구수 증가보다는 최근 4~6년 사이에 급증한 유동성 풍년 때문에 주요 나라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그런데 전 세계 총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의 중앙은행이 긴축기조로 돌아섰다. 돈이 줄고 있어 파열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거품에는 신화가 따른다. 그럴듯한 또는 허무맹랑한 논리들이 횡행하며 사람들이 부풀어 오른 가격을 믿도록 한다. 1840년대 영국과 1860년대 미국의 철도거품 시기에는 “철도를 건설할 곳이 전 세계에 널려 있고 산업은 무한대로 발전하기 때문에 철도회사 주가는 계속 상승한다”는 말에 당시 사람들이 취했다.
인터넷 거품 시기에는 좀 더 세련된 논리와 개념들이 만들어졌다. 경기변동에서 자유로운 경제구조를 의미하는 ‘신경제’라는 말이 유행했다. 실적을 내지 못한 인터넷 기업의 주가급등을 합리화하기 위해 주가수익배율(PER) 대신 ‘주가매출배율(PRR)’이라는 증권용어도 탄생했다.
요즘 부동산 시장에서는 ‘유한한 도시택지에 점증하는 인구와 끝없는 욕구상승’이라는 고전적인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도시택지는 한정돼 있는 데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더 좋고 넓은 집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영국 카디프대학의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로즈니크는 “버블을 합리화하는 논리는 거품 색깔만큼 화려했다”며 “하지만 역사상 꺼지지 않은 거품을 찾기는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경제정책연구소의 딘 베이커는 “이코노미스트와 앨런 그린스펀 등 중앙은행가들은 1990년대 인터넷 거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경기침체와 실직, 퇴직연금 증발 등 후유증을 피할 수 없었다”며 “전 세계적인 부동산 거품이 파열하면 IT 거품보다 더 큰 후유증이 예상되기 때문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