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 방식' 재건축 단지 등장에 서울 재건축시장 '술렁'

by김성훈 기자
2016.11.20 15:03:53

'도정법' 개정에 신탁사도 재건축사업 가능
여의도 시범아파트, 한국자산신탁 시행사로 선정
주요 재건축 단지서 사업설명회 잇달아 개최
사업 속도↑, 공사비·조합비리↓..업계 '긍정적'
"신탁 방식 재건축 전례 없어…75% 동의가 변수"

△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지난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학교 대강당. 총 600석 규모의 좌석이 꽉 찼고 미처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까지 총 700여명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한산한 주말 수백 명을 모은 원동력은 여의도 시범아파트(전용면적 60~156㎡ 1790가구)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진행한 ‘시범아파트 재건축 예비신탁사 선정 총회’였다. 당초 한국자산신탁(한자신)과 대한토지신탁의 2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총회를 앞두고 대한토지신탁이 사업 참여 포기 의사를 밝혀 한자신의 찬반 투표로 진행됐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김선철 한자신 도시재생사업실장은 “내년 1월 신탁동의서 제출을 완료하고 내년 연말까지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하겠다”며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신탁 방식 재건축의 시범 사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발표 중간 일부 주택형의 경우 재건축을 통해 조합원이 최고 1억원이 넘는 돈을 되돌려받을 수 있다는 한자신의 설명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설명회 후 진행된 투표에서 시범아파트 소유자 651명 중 627명(96.3%)이 한자신을 재건축 신탁사로 선정했다. 서울 시내 대단지 아파트로는 처음으로 신탁 방식 재건축을 위한 첫걸음을 뗀 것이다.

신탁방식 재건축 사업이 수면으로 떠오르자 여의도 시범아파트 매맷값도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시범아파트 전용면적 60.96㎡ 주택형은 이달 현재 7억 3000만원으로 올 5월(6억 1000만원)보다 1억 2000만원 올랐다. 6개월 새 아파트값이 20% 가까이 뛰며 종전 최고가였던 2010년 4월 가격(7억4000만원)에 육박한 것이다. 여의도동 B공인 관계자는 “재건축사업이 물꼬를 트면서 아파트 매매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내년 초 신탁동의서 제출이 완료되면 집값이 추가로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과거 집주인들이 설립한 ‘조합 방식’에 의존하던 아파트 재건축사업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3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으로 부동산 신탁사도 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단독 시행사로 참여할 수 있게 돼서다. 조합 방식보다 짧은 사업 기간과 줄어든 공사비, 코앞으로 다가온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시행까지 더해지면서 서울 시내 주요 재건축 단지들도 신탁 방식 재건축사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성아파트’(121가구)는 최근 신탁 방식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해 재건축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단지는 지난달 코리아신탁을 재건축 사업시행자로 선정하고 용산구청의 승인을 거쳐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다. 여의도 공작아파트(373가구)와 신반포 궁전아파트(108가구), 한남 하이츠아파트(535가구)도 신탁사 재건축 사업을 검토 중이다. ‘강남 재건축 1번지’로 꼽히는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비롯해 대치 미도, 개포 현대1차·우성3차·경남1~2차, 잠실 장미·진주·미성 등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도 최근 잇달아 신탁 방식 재건축 설명회를 열었다.



신탁 방식 재건축은 전체 주민의 75% 이상 동의를 얻어 신탁사를 사업시행자로 지정하면 신탁사가 사업비 조달부터 분양까지 재건축사업 전 과정을 책임지는 재건축 방식이다. 가장 큰 장점은 빠른 사업 속도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 실장은 “신탁 방식 재건축사업은 조합을 설립하지 않고 신탁사에 사업을 위탁하는 구조여서 사업기간을 1~3년 단축할 수 있다”며 “사업기간이 줄어들면 사업비용이 감소하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신탁사가 전체 자금관리를 맡고 전 과정을 공개해 투명한 사업 진행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때마침 내년 말로 유예기간이 끝나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도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는 조합원 인당 평균 이익이 3000만원을 웃돌면 이익금의 최대 50%까지 환수하는 제도로 부동산시장 활황기였던 2006년 도입됐다가 시장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에 내년 말까지 시행이 유예된 상태다.

관심이 뜨거운 신탁 방식 재건축이지만 따져봐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신탁사 대부분이 재건축사업 경험이 적은데다 서울에서 신탁 방식 재건축사업을 성공한 전례도 없어 사업 진행에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대형 건설사 정비사업 부문 관계자는 “주민 중에는 재건축을 반대하는 의견도 있어 소유자 75% 이상의 자발적인 동의를 받는 것이 관건”이라며 “2018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초과이익 환수제를 피하려면 내년 말까지 관리처분인가를 받아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해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탁 방식 재건축이란… 전체 소유주(집주인) 4분 3 이상의 동의를 받은 부동산 신탁사가 사업시행자로 나서 초기부터 재건축 사업비를 대고 시공사 등을 선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추진위 구성과 조합 결성 등의 과정이 생략돼 정비사업 기간이 단축된다는 장점이 있다. 조합 비리와 같은 문제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