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에버랜드 판결 관련 삼성 변호인단 입장

by양효석 기자
2007.05.29 14:59:51

[이데일리 양효석기자] 에버랜드 사건 항소심 판결에 대한 피고인과 변호인의 입장

-항소심에서는 법리와 회사법 원칙에 따라 당연히 공소사실 전체에 대하여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항소심 판결은 검찰이 기소한 에버랜드의 손해액 970억원 중 89억원만 유죄로 인정하고, 나머지 881억원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법당국 간에도 극명하게 의견다툼이 있는 의무를 10여 년전 기업임원에게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항소심에서는 ‘삼성그룹 차원의 지배권 이전 목적의 공모’ 라는 공소사실의 기본전제를 인정하지 않고 범죄사실에서 배제함으로써 검찰의 지금까지의 주장을 사실상 배척하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전환사채 발행시 전환가격이 높든 낮든 회사에 들어오는 돈(자금)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단지 전환가격이 낮으면 발행되는 주식 수(數)가 더 많아지고, 그로 인해 기존 주식가치가 더 많이 떨어지게 되면 그 손해가 기존주주에게 돌아가는 것일 뿐이지, 회사에는 손해가 발생할 수 없습니다.

-설사 전환사채의 발행으로 회사(에버랜드)의 지배권에 변동이 생기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손해가 발생한다면 당초 지배권을 갖고 있던 기존주주에게 발생할 뿐, 회사와는 무관합니다.

-그동안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학계와 법조계에서 유무죄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습니다. 이 사건 항소심 판결은 법리상 문제가 많은 만큼 법률심인 대법원에서는 순수하게 법 논리에 따라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판결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닙니다. 피고인들은 항소심 선고결과에 관계없이 경영활동에 더욱 매진함으로써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소임을 다해 나갈 것입니다.


○ 96년 전환사채 발행 당시 법령상 기준과 실무관행에 따르면 비상장사가 전환사채를 발행할 경우 전환가격은 액면가 이상이면 되었습니다. 피고인들은 그 기준에 맞게 액면가 5,000원을 넘는 7,700원을 전환가격으로 책정한 것이며, 그 과정에 어떠한 위법사항도 없습니다.

○ 검찰은 적정 전환가격을 85,000원으로 보고 에버랜드의 손해액이 약 970억원이라는 취지로 공소제기를 하였으며, 그 후 항소심에 와서는 적정 전환가격이 22만원을 상회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적정 전환가격의 산정이 불가능하여 손해액을 특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반면에, 항소심에서는 적정 전환가격이 약 14,825원이라며 손해액을 약 89억원으로 대폭 축소하였습니다.

결국 항소심 판결은 검찰 공소사실의 10분의 1도 안되는 금액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금액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것입니다.

○ 만약 피고인들이 애당초 항소심 판결처럼 전환가격을 14,000원으로 책정하여 전환사채를 발행하였더라도, 검찰은 85,000원이 적정 전환가격이라며 에버랜드의 손해액을 약 900억원으로 보고 기소하였을 것입니다. 검찰의 기준에 의하면 피고인들이 항소심 재판부의 기준에 따랐어도 배임으로 기소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6년간의 수사와 재판이 진행된 현 상황에서, 사법당국 간의 판단이 이렇게 극명하게 갈릴 정도로 어려운 임무를 10여 년 전의 기업임원인 피고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 전환사채도 사채이기 때문에 회사는 전환사채를 발행함에 있어 그 발행예정총액(이 사건의 경우 약 100억원)에 해당하는 인수자금이 들어오면 그것으로 발행절차가 종료되는 것입니다. 회사는 그 후 인수인이 전환청구를 하면 정해진 전환가격에 상응하는 수량의 주식(=전환사채 인수금액 ÷ 전환가격)을 발행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때 전환가격이 낮으면 주식을 많이 발행해 주어야 하는 반면(총액은 100억원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 전환가격이 높으면 주식을 적게 발행해 주어도 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주식을 많이 발행하게 되면 그만큼 전체 주식 수가 많이 늘기 때문에 기왕에 발행된 주식의 가치가 더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주식가치가 희석(dilution)되는 만큼 기존 주주들에게 손해가 발생할 뿐입니다.

○ 결과적으로 전환가격이 높든 낮든 회사에는 추가로 더 들어올 돈이 없으며, 따라서 손해가 발생할 수도 없습니다. 손해가 발생한다면 주주에게 발생할 뿐 회사와는 전혀 무관한 문제입니다.

전환사채의 주식전환으로 인한 자본의 증감은 회사의 손해나 이익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 회사법의 기본원리입니다.





○ 회사의 지배권은 회사의 주주에게 있습니다. 에버랜드의 지배권도 주주들에게 있습니다. 에버랜드의 지배권이 제3자에게 이전될 경우 지배권을 잃게 되는 것은 에버랜드의 주주들입니다. 회사(에버랜드) 자체가 지배권을 잃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에버랜드의 지배권 이전에 따라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는 것을 전제로 회사(에버랜드) 임직원들에게 배임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습니다.

○ 이 사건의 실체는 단순합니다.
에버랜드의 이사인 피고인들이 전환사채를 발행해 기존 주주들에게 배정했으나 일부 주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주들이 전환사채를 인수를 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그 실권분을 제3자에게 배정한 것입니다.

기존 주주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전환사채를 인수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전적으로 자신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입니다. 전환사채 발행으로 에버랜드의 지배권에 변동이 생긴 것은 에버랜드의 주주들이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고 실권하여 제3자가 인수하도록 용인했기 때문입니다.

기존 주주들의 실권에 대해 이사인 피고인들이 관여할 여지는 없습니다. 항소심 판결은 주주들의 실권으로 주주들 본인이 입을 수 있는 손해에 대해 피고인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으로, 법리는 물론 상식에도 맞지 않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이같은 사안에서 이사의 형사책임이 문제된 사례가 전혀 없습니다.

○ 이 사건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참여연대 측에서는 에버랜드의 기존 주주로서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고 실권했던 제일모직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제일모직 임직원들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아 제일모직에 손해가 발생했으니 그 실권 결정을 내렸던 임직원들이 제일모직에 대해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실권 결정에 따라 당시 에버랜드의 주주였던 제일모직에 손해가 발생했다는 논리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이번 항소심 판결의 논리와 상반됩니다.


○ 1996년 에버랜드가 전환사채를 발행할 당시 에버랜드가 보유하고 있던 삼성계열사 지분은 삼성전자 0.13%, 삼성전관 0.27%, 삼성항공 0.33%, 삼성자동차 1.8%에 불과하였습니다.

최근 순환출자 문제로 주목을 받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은 단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대주주가 된 것은 전환사채 발행으로부터 2년이나 지난 뒤인 1998년으로, IMF 외환위기 이후입니다. 그나마 당시 에버랜드가 취득한 삼성생명 주식은 공정거래법에 의해 의결권 행사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IMF 이전의, 다시 말해 1996년 전환사채 발행 당시의 에버랜드는 삼성그룹 지배권과는 무관한 회사였습니다. 따라서, 삼성그룹의 지배권 이전을 목적으로 관련자들이 공모해서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제3자에게 배정했다는 논리는 허구에 불과합니다.

○ 항소심 재판부도 ‘삼성그룹 차원에서 에버랜드의 지배권 이전을 위해 치밀한 사전기획 하에 전환사채를 발행한 것이 이 사건의 실체’라는 공소사실의 기본전제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피고인들이 삼성비서실이나 주주들과의 사전공모 하에 지배권 이전 목적으로 전환사채 발행을 기획하였다는 취지의 내용은 범죄사실에서 배제한 것입니다.



○ 『법규는 현재와 미래에 관하여 규정하고, 과거에 관하여 규정하지 않는다(A proviso is to provide for the present and the future, not the past)』는 법 격언이 있습니다.

에버랜드가 전환사채를 발행한 것은 IMF 외환위기 사태 이전인 1996년으로, 기업 환경이나 법 규정이 현재와는 전혀 달랐던 10여년 전의 일입니다.

에버랜드의 임직원들은 당시의 법에 정해진 기준과 절차에 따라 전환사채를 발행하였던 것으로 법에 어긋난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수년이 지난 다음에 발생한 사후 사정을 내세워 당시와는 전혀 다른 현재의 잣대와 시각으로 피고인들에게 배임의 책임을 묻는 것은 수긍할 수 없습니다.

○ 3년간의 수사와 3년간의 재판으로도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 대표이사의 임무내용을 10년 전의 기업임원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의에 반합니다.
더구나 민사책임도 아닌 형사책임을 물으려면 적어도 그러한 임무를 요구할 기대가능성이 분명하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