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병수 기자
2005.08.03 16:28:49
[이데일리 김병수기자] 사람들은 `돈`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 돈의 흐름에 대해 직접 관련돼 있는 곳이 한국은행이라면, 그 돈을 만지작거리는 금융회사를 관리·감독하는 곳이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입니다. 이 금융감독을 책임지고 있는 首長, 윤증현 위원장이 취임 1년을 맞았습니다. 그 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참여정부 경제정책이 다소 혼란스럽게 비춰지면서 각 섹터도 이런저런 혼란에 몸살을 앓았습니다. 김병수 기자가 윤증현 위원장께 편지를 띄웁니다.
`돈`이라는 것이 참 요망한 것이기는 한가 봅니다. 이 놈의 `돈`이 온 나라를 흥하게도 만들고, 반대로 쑥대밭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 놈이 글쎄, 여러 군데로 흩어져 `밀알`이 되지 않고, 요즘 관심이 높은 한 곳(부동산)으로 몰려들어 온갖 잡소리를 내품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 놈의 돈줄을 돌려 놓고자 하는 당국자들의 노력도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금융산업에는 보통 관치(官治)라는 말이 많이 따라 다닙니다. 이 것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돈의 물줄기를 좌지우지하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소위 박정희식 개발연대 시대에 관치금융이 만연했던 것이 이런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관(官)이 치(治)한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이 얘기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아마도 부작용 때문일 겁니다. 금방 효과는 있는 것 같은데, 나중엔 더 골병이 들어있는 그런 거 말입니다. `돈`이라는 것은 그러한 특성을 가장 많이 가진 `수단`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많은 산업부문 중에서도 유독 금융이라는 영역이 `관치`의 유혹에 약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전 금융감독당국은 `금융회사의 주택담보대출 리스크관리 강화방안`이라는 것을 내놨습니다. 집값이 너무 높네 낮네, 낮춰야 하네 말아야 하네 등 말이 많으니,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고, 이를 담보로 대출한 금융회사의 리스크(위험)가 높아진 것이니, 금융감독당국의 입장에선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배경 설명입니다.
그런데 참 요망한 것이, 너무나 당연한 듯한 이 설명이 곧이곧대로 들리질 않습니다. 돈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돌려놓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리고 충분히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지금은 일단 돈의 흐름을 틀어막는데 급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 자체를 탓할 생각은 별로 없지만, 한번 흐름이 막힌 돈 줄이 어디선가 터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결국 官이 治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에선 돈줄을 좌지우지하면서 일어나는 관치를 봤습니다. 이제는 급해서 일단 막았는데 터졌으니, 또 관치를 해야하는 상황을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자연스런 돈의 흐름(금융)을 인위적으로 막고 돌려놓았으니, 뒷수습을 누군가는 해야한다는 거겠죠. 당연히 수습의 주체는 官일 가능성이 높고, 다시 治를 해야 하는 거죠. 악순환입니다.
얼마전 금융감독당국은 급조된 이번 방안의 보완을 위해 이런저런 추가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그 중엔 투기지역에서도 1가구 1주택자에 대해선 LTV내에 추가대출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LTV 범위내라면 형식은 추가대출이어서 즉 대출횟수제한에 걸리지만, 전세끼고 매매가 이뤄지는 다양한 우리의 주택매매 특성 등을 감안해 인정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의문이 생깁니다. 투기지역에서 두채의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는데 LTV를 다 채우지 않았다면, 이 경우에도 가능한가. 즉 추가대출이 가능한가의 얘깁니다. 정답은 조금은 황당했지만 `노(No)`였습니다. 왜냐하면, 좀전에 얘기한 `1가구 1주택`이라는 기준이 여기에 적용되더라구요.
현재 우리나라 금융부문에선 가구별 여신현황을 집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대책에 구멍이 많다는 지적이 처음부터 나왔었죠. 근데, 금융감독당국은 1가구 1주택자에게는 LTV내 증액(추가대출)을 허용하는데, 1가구 2주택자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1가구 3주택자에 대한 대출 가산금리도 비슷한 측면으로 이해됩니다. 일반적으로 3주택자면 그 만큼 신용이 좋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담보가 충분하다는 얘기니까요. 물론 대출을 마구 끌어다 일을 벌리는 투기꾼에 대한 경고와 단속은 이뤄져야죠. 그러나 `신용`을 숫자로 표시한 것이 금리인데, 3주택자가 신용이 더 낮다는 것은 조금은 해괴망측합니다.
이 정도 되면, 제가 출입하는 곳이 금융감독당국인지 부동산감독당국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이런 정책이 성립하는 것은 땅 덩어리도 좁고 집도 모자라는 데 한사람이 여러채의 집을 가지는 것은 나쁘다 또는 나라 경제 전체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다는 `가치`가 개입된 결과일 겁니다.
윤 위원장 한테서 이런 `가치`의 문제는 취임 1년 동안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참여정부 출범후 개혁적 성격이 강했던 인사들이 더딘 경기회복에 밀려 자리를 떠났고, 그 과정에서 `가치`를 바꾸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냐고도 말합니다.
제가 보더라도 윤 위원장의 색채는 참여정부 초기의 색깔과는 많이 다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굳이 윤 위원장의 과거 정책적 실패의 아픔을 떠올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닌 이상, 실패에 발목을 잡는 것도 치사합니다. 허나, 실패를 만회할 기회가 왔다면 누구보다 더 열심히 정도를 걷는 게 이 땅의 관(官)으로서 맞을 듯 합니다.
윤 위원장은 "내가 여기(금감위)에 와서 보니 미국에서도 부작용이 많아 제도개선이 이뤄지고 있는데, 여태 뭐했는지 모르겠다"는 질타성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증권관련 집단소송제에 대한 정책변화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정책적 부작용`에 눈을 감은 많은 공무원들은 너나할것 없이 소위 잘 나가고 있습니다. `정책 따로 사람 따로`는 결국 `신뢰의 상실`을 가져오고, 과거 관치경제 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지 않은가 반문해 봅니다.
돈이 좀 더 생산적인 곳에 쓰이도록 정책을 펴는 것은 금융당국의 몫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윤증현 금감위원장도 `선제적` 감독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생산적인 곳 또는 생산적이지 않은 곳의 가름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더욱이 돈의 흐름을 어느 정도 틀어야 한다면 그 것은 경제주체와 금융시장 관계자들이 예측할 수 있는 범위내여야 합니다. 그 만큼 자연스럽게도 진행돼야 합니다. 그래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금융감독은 그래서 어렵다는 얘기를 합니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의 분리도 그래서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자연스럽지 못하거나 객관적이지 못하거나 합리적이지 못할 때 우리는 부정적인 의미의 `官治`를 떠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