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마켓 안전자산 아니다..엑소더스 개시"

by하정민 기자
2007.09.13 15:30:04

WSJ 보도..신용위기 지속되면 신흥시장 탈출 불가피
낮은 저축률·높은 대미 수출의존도 등이 불안요인

[이데일리 하정민기자] 글로벌 신용위기 와중에서도 우수한 수익을 자랑했던 이머징마켓 자산의 투자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 보도했다.

이머징마켓 국가의 낮은 저축률, 과도한 대미(對美) 수출의존도 등이 특히 위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투자자들이 이머징마켓을 신용 위기 속 `안전자산(Safe Haven)`이라 평가하고 있지만, 신용 위기가 장기화하면 이들도 결국 이머징마켓에서 발을 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부는 이미 탈출을 시작했다고 WSJ은 평가했다.



모간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에 따르면 올들어 현재까지 이머징마켓 지수는 달러화 기준으로 19% 올랐다. 신용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8월 3주 동안 18%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전체 성적은 아직 좋다.

반면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MSCI 선진국 지수는 불과 5.1% 올랐다. 다우존스 지수 상승률도 6.6%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머징마켓의 투자 위험은 여전하다. 터키와 헝가리는 버는 것보다 더 쓰고 있고,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는 `포퓰리즘` 성격이 짙은 정책으로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멕시코와 이스라엘은 대미 수출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미국 경기 변동에 휘둘릴 위험이 많다.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는 지난 주 신용 위기가 장기간 지속될수록 이머징마켓 투자 위험이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터키, 불가리아, 라트비아, 루마니아 등이 신용 위기에 취약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S&P는 터키, 헝가리, 남아프리카 공화국, 레바논, 몇몇 동유럽 국가의 경우 버는 것보다 훨씬 많이 쓰는 심각한 저축률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경우 신용 위기로 인한 미국 경제 침체 위험이 큰 부담이다. 아시아와 중남미는 특히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다.



현재 중남미의 평균 대미 수출액이 각국 국내총생산(GDP)의 9.7%에 달한다.
 
멕시코의 경우 대미 수출액이 국가 GDP의 85%에 이를 정도로 미국 경기 변화에 민감하다.
 
아시아도 이 수치가 6.0%다. UBS는 아시아에서 미국 경기변화에 가장 민감한 나라로 말레이시아, 대만, 태국을 꼽은 바 있다.

이머징마켓 개별 기업의 대미 의존도도 심각하게 높다.

한국 반도체 업체 삼성전자(005930), 인도 IT 업체 인포시스, 이스라엘 제약업체 테바, 대만 IT 업체 TSMC와 혼하이 정밀, 멕시코 시멘트업체 세멕스, 브라질 정유업체 페트롤레오 브라질레오 등은 매출의 20% 이상을 미국 시장에서 거두고 있다.

브라질 항공기 제조업체 엠브라엘, 페루 광산업체 서던 쿠퍼, 멕시코 식품업체 그루마는 대미 의존 매출 비중이 30%가 넘는다.



일부 투자자들은 이미 이머징마켓 투자자금을 회수하고 있다. 실제 선진국 투자자들이 금융 위기 시 이머징마켓 자산부터 먼저 회수한다는 것은 정석 중의 정석이다.

슈로더 자산운용의 앨런 콘웨이 매니저는 "추가 금융위기로 이머징마켓 경제가 심각한 하강 위협을 받을 수 있다"며 "이 때문에 몇 주 전 터키 투자를 철회했다"고 공개했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 핌코 역시 이머징마켓 채권 투자를 꺼리고 있다고 밝혔다. 핌코는 자금조달 비용이 높은 헝가리·터키, 모순된 경제 정책을 가지고 있는 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 채권 투자를 지양하겠다고 밝혔다.

핌코의 이머징마켓 담당 마이클 고메즈 책임자는 "예전에는 무조건 고수익이 최고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일단 투자 전에 시장 상황이 어떤 지를 먼저 확인한다"고 말했다.

JP모간의 데이빗 헨슬리 이코노미스트는 "이머징마켓은 세계 경제 성장의 수혜를 많이 입기 때문에 글로벌 성장 둔화로 국제 원자재 수요가 줄면 이머징마켓 경제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S&P의 모리츠 크레이머 이사는 "신용 위기는 절대 `찻잔 속 태풍`이 아니다"라며 이머징마켓 투자 시 주의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