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이 변한다)⑨김기자, 오너가 왜 다른지 아나?

by김수헌 기자
2004.11.12 15:30:00

큰 그림 오너가, 전문경영인은 자율 독립 책임경영으로
전문경영 善 오너경영 惡..이분법은 맞지않아

[edaily 김수헌기자] "김 기자, 기업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어떤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나는지 아나?" 최근 만난 삼성그룹 한 계열사 사장이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머뭇머뭇하는 기자에게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회장은 24시간 회사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거지" 이건희 삼성 회장이 회사 경영을 고민하는만큼 전문경영인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꿈속에서도 회사 생각하는 것 같아" 30여년을 삼성에서 근무한 이 사장은 절반 이상을 과거 회장 비서실에서 비서팀장, 감사팀장, 경영지도팀장 등을 두루 거쳤다. "회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모셔봐서 알지만, 꿈속에서도 회사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자다가도 일어나 나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다. 새벽 2시에 전화를 해서는 `문득 생각난 구상이 있어 전화했는데 여기로 좀 오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전문경영인들이 오너 고민의 수준을 따라가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 사장은 또 이렇게도 말했다. "회장이 회사 경영실적이나 사업과 관련해서 꼬장꼬장 따지지를 않는다. 차라리 그렇게 해주면 전문경영인들은 더 편할 것이다. 언젠가 한번 회장이 사장단 회의에서 `10년~20년 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어떤 제품이 세상을 지배할지 지금 알 수는 없지만, `사람`을 잘 키우면 어떤 변화가 와도 대비할 수 있다. 인재를 키워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회장은 이렇게 큰 방향을 제시할 뿐, 나머지 회사 경영은 전적으로 전문경영인인 나에게 맡긴다" ◇오너경영은 `惡` 전문경영은 `善`..흑백논리 아직도 그룹경영의 큰 방향을 놓고 고민하는 오너, 회사의 실질적인 경영을 맡고 있는 전문경영인. 사실 삼성, LG, SK 등 우리나라 주요 그룹의 경영시스템은 이렇다. 전문경영인들의 자율과 독립, 책임경영체제가 정착되고 있다. 경영학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질문 중 하나가 "오너경영이 나은가, 전문경영이 나은가"라는 이야기가 있다. 대다수는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어떤 체제가 절대적으로 나은지 증명된 적도 없고, 일부 회사의 사례를 대부분 회사에 통용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오너경영체제는 `나쁜 것`이고 전문경영인체제는 `좋은 것`이라는 흑백논리가 아직도 존재한다. 이같은 논리는 과거 일부 기업의 오너경영체제에서 벌어졌던 황제경영행태가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보 청문회 때 정태수 전 회장은 자기가 앉힌 최고경영자들에 대해 "머슴이 뭘 알겠느냐"고 발언한 적이 있다. 이는 그 해 `최악의 발언`으로 지목됐다. 정 전 회장은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머슴 발언`에 대해 "전문경영인들은 자기 회사 사정밖에 모른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하긴 했다. 하지만 전문경영인을 머슴에 비유한 것은 오랫도록 `황제경영`을 상징하는 단어로 각인됐다. ◇오너패밀리-전문경영인, 적재적소에 지난해 LG그룹에서 LG전선그룹이 계열분리될 때 LG필립스LCD(034220) 구본준 부회장 거취가 관심사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당시 구자홍 LG전자 회장은 공정거래법 상 계열분리 요건에 따라 LG전자(066570) CEO 자리를 내놓고 LG전선그룹으로 옮겨가야 했다. 당연히 이 공백을 누가 메울 것인지 재계 시선이 집중됐다. 시장에서는 구본무 회장 친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이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LG전자가 LG그룹의 최고 핵심 계열사인만큼 오너 패밀리인 구 부회장에게 돌아가지 않겠느냐는 것.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전문경영인인 김쌍수 디지털어플라이언스담당 부회장이 전격적으로 CEO에 발탁됐다. LG 관계자의 설명은 이렇다. "구본준 부회장은 잘 알다시피 LCD 분야에서 해박한 지식과 경영능력, 사업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이 사업에서 대단한 성과를 내고 있기도 하다. 구 부회장은 오너이지만 사실 전문경영인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오너니까 LG전자를 경영해야 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비합리적이다. 김쌍수 부회장은 LG전자에서 잔뼈가 굵었고 뛰어난 성과를 낸 혁신주의자다. LG전자를 잘 안다. `오너`냐 `전문경영인이냐` 하는 것이 계열사 CEO 인사의 기준이 되는 것은 낡은 재벌체제에서나 가능하다" LG에서 `오너`냐 `전문경영인이냐` 하는 구별은 별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사실 지금 LG전선 회장을 맡고 있는 구자홍 회장 역시 LG전자 CEO 시절에는 전문경영인으로 분류됐었다. 구본무 회장도 LG화학 심사과장, 수출부장, 유지사업본부장, LG전자 도쿄주재 임원, 회장실 전무 등을 20년 이상을 일선 현장을 뛰다 회장 자리에 올랐다. ◇오너와 전문경영 조화, 한국적 경영의 장점 LG는 특히나 지주회사체제의 출범과 함께 계열사간 `순환출자구조`을 해소하면서 지주회사는 출자전담, 사업자회사들은 출자에 대한 부담없이 고유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갖췄다. 경영자들이 회사 자체의 가치증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셈이다. LG는 출자구조 단순화로 `경영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LG 관계자는 "오로지 사업실적에 따라 평가받는 전문경영인 책임경영체제와 이사회 중심 경영을 통해 사업경쟁력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주주가치 및 기업가치 극대화를 실현해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LG전자 권영수 부사장은 "구본무 회장은 자회사 경영자들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책임경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며 "구 회장은 `내가 경영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주주로서)배당받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을 한다"고 전했다. 권 부사장은 오너경영과 전문경영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오너가 경영전횡을 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오너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긍정적 효과가 있으며, 필요하다고 본다. 전문경영인들은 과감한 투자를 주저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장치산업같은 경우 투자효과가 몇년 뒤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오너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대목이 이런 부분이다. LG필립스LCD같은 경우 구본준 부회장이 아니었으면 저렇게 투자를 과감하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영원한 2등 아니면 3등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물론 중요한 최종결정을 오너가 내릴지라도 전문경영인이 타당성을 검증하는 보완작업을 해야 한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적절한 조화, 이것이 한국경영의 큰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