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수의 월가 키워드)Who`s Your Daddy?

by정명수 기자
2004.10.28 13:39:29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결국 보스턴 레드삭스가 월드 시리즈 우승컵을 안았다. 86년만이다. 양키즈의 벽을 넘은 레드삭스가 `밤비노의 저주`에서도 벗어났다. 올해 메이저 리그 포스트 시즌에서는 월드 시리즈보다도 라이벌 레드삭스와 양키즈 간의 게임이 야구 팬들을 열광케 했다. 지난 13일 찾아간 뉴욕 브롱스 양키 스타디움(사진)은 무척 지저분했다. 평소 야구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숙적 레드삭스와의 경기를 놓칠 수는 없었다. 아메리칸 리그 챔피온 시리즈(ALCS) 2차전 티켓을 무려 액면가의 3배를 주고 샀다. 스타디움은 관중들로 만원이었다. 곳곳에 경찰이 서 있었지만, 양키 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B` 자가 선명한 모자를 쓴 보스턴 팬들을 야유하며, 일방적으로 양키즈를 응원했다. 양키 골수 팬들은 보스턴 응원단에 대해 가차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땅콩, 팝콘, 휴지 등이 쏟아지기도 했다. 평소 같았으면 큰 싸움이 날 정도로 심한 욕을 했다. 레드삭스(Red Sox)를 `Red Suck`이라며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 깜짝 놀랐다. `저렇게 욕을 해도 되나` 레드삭스 팬들은 웃으면서 그냥 넘어갈 뿐 대응을 하지 않았다. 양키 팬들로 포위된 상태에서 대응은 곧 싸움이다. 관중석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되는 즉시 경찰들이 달려왔다. 양키즈와 레드삭스 경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격렬했다. 단순한 스포츠 게임이 아닌 것 같았다. 2차전 레드삭스의 선발은 페드로 마르티네즈. 이 친구는 지난해 ALCS에서 아버지 뻘 되는 양키즈의 투수코치를 그라운드에 내동댕이쳐서 양키 팬들의 공분을 샀던 인물이다. 양키 팬들은 마르티네즈가 공을 던질 때마다 "Who`s your daddy!"라고 외쳤다. 메이저 리그에는 별도의 응원단이 없다. 관중들은 대형 전광판에 "야유를 퍼부으세요"라고 사인이 나오면 그에 맞춰서 소리를 질렀다. 2차전은 양키의 승리였다. 적진 보스턴에서 치뤄진 3차전은 19대 8의 대승이었다. 그러나 이후 내리 4판을 져서 양키즈는 `가을의 전설 ` 월드 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했다. `야구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라이벌의 전쟁을 지켜봤다. `미국인들에게 도대체 야구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또 `무엇이든 돈으로 연결시키는 미국인들이 어째서 프로야구 팀은 주식시장에 상장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야구, 메이저리그의 경제학은 가장 미국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비미국적이었다. ◇양키즈 vs 레드삭스 어디에나 라이벌은 있다. 그러나 양키즈와 레드삭스 같은 라이벌은 없다. 1920년 레드삭스가 베이브 루스를 양키즈에 팔아버린 이후 둘은 앙숙이 됐다. 이것이 유명한 `밤비노의 저주`다. 양키즈는 레드삭스가 월드 시리즈로 향하는 길목에서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선수들끼리 난투극을 벌이는 일도 허다하다. 지난해에도 두 팀은 ALCS에서 만나,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인 끝에 양키즈가 승리했다. 올해는 메이저 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3대0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레드삭스가 3대4로 역전승을 거뒀다. 발목 부상을 입은 레드삭스의 에이스 커트 실링이 피로 붉게 물든 양말을 신고 역투하는 모습은 전율을 일으킬 정도다. 그런데 두 팀의 월드 시리즈 성적은 분명한 것을 보여준다. "부자 팀이 우승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양키즈는 39번 메이저 리그에 나가서 26번 우승한 자타가 공인하는 야구의 명가다. 반면 레드삭스는 1986년 이후 18년만에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고, 1918년 이후 천신만고 끝에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양키즈의 한해 매출은 3억달러, 레드삭스보다 5000만달러가 많다. 올해 양키즈가 선수 연봉으로 쓴 돈은 1억8500만달러에 달한다. 레드삭스가 양키즈 다음으로 돈을 많이 썼다고 하는데도 양키즈에 비하면 6000만달러나 적다. 양키즈는 미국 최고 부자 야구단이다. 돈을 아끼지 않고 좋은 선수들을 끌어오니, 성적이 좋은 것이 당연하다. ◇Who`s your daddy? 마르티네즈가 등판했을 때 관중들이 "Who`s your daddy"라고 야유한 것은 상징적으로 양키즈라는 구단의 위상을 말해준다. 지난 9월 양키즈와의 경기에서 패한 뒤 기자회견에서 마르티네즈는 "양키즈는 넘어설 수 없는 아버지같은 존재"라고 털어놨다. 그 이후 마르티네즈가 나올 때마다 "누가 네 아버지냐"고 야유를 하는 것이다. 마르티네즈의 고백은 사실 미국 야구 선수라며 어느 정도 공감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양키즈가 배출한 걸출한 스타들을 영웅으로 생각하며 선수로 커 왔으니, 잠재의식 속에 양키즈는 모든 야구 선수들의 아버지인 셈이다. 그런데 양키즈는 물질적으로도 모든 야구 선수들의 아버지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펑펑 돈이 솟아 오른다. 현재 양키즈의 구단주 조지 마이클 스테인브레너3세는 1973년 단돈 1000만달러를 주고 CBS로부터 양키즈를 사들였다. 스테인브레너의 별명은 `보스(The Boss)`다. 그의 치세(?)에 양키즈는 9번 아메리칸 리그 챔피온이 됐고, 6번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그는 단장과 감독을 멋대로 갈아치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뉴욕이라는 엄청난 야구 시장을 독점하다시피하면서, 최고의 선수를 영입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1996년 양키즈가 선수 연봉으로 쓴 돈은 6100만달러였다. 8년만에 연봉은 세배로 불어나 1억8500만달러가 됐다. 이 돈은 메이저 리그 연봉 하위 6개 구단 전체 연봉과 맞먹는 수준이다. 2002년 양키즈의 연봉이 1억5000만달러를 돌파하면서 다른 구단들은 양키즈와의 `돈 싸움`을 포기하고 만다. 경쟁팀인 레드삭스는 양키즈를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비난했다. 양키즈가 돈의 힘으로 우수 선수를 싹쓸이 한다는 것. `보스`가 이처럼 다른 구단을 압도하는 이유는 시장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때문에 뉴욕시가 벌어들이는 세수는 8500만달러에 달했다. 이는 메이저 리그 8개 구단의 입장료 수입과 맞먹는다. 입장료 외에 각종 프랜차이즈 상품, TV 방송 중계료 등을 감안하면 양키즈는 화수분이나 마찬가지다. 야구의 상징인 양키즈가 훌륭한 선수를 뽑고,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뉴욕시민, 나아가 전 미국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일종의 의무라는 것이 `보스`의 생각이다. 이 의무를 다하기 위해 양키즈는 얼마든지 돈을 써도 좋다. 양키 팬들은 열광하고, 미국도 따라서 열광한다. 양키즈의 이런 철학에 비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돈을 쓴 만큼 성적이 좋지 않다거나, 왜 메이저 리그 우승이 이렇게 뜸하냐는 것. 양키즈가 선수들 몸값을 너무 올려놔서 다른 팀들의 전력 보강이 쉽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양키즈의 이같은 `제국주의적` 투자는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월스트리트 투자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마이클 루이스의 책 `머니 볼(Money Ball)`은 값싸지만, 재능이 뛰어난 무명 선수를 영입해서 훌륭한 메이저 리거를 만든 후 비싼 값에 다른 구단으로 되파는 오클랜드 에스레틱스의 투자전략(?)을 다루고 있다. 오클랜드 에이즈(Athletics=A"s)의 `가치 투자`가 양키즈의 제국주의적 투자의 정반대 위치에 있는 셈이다. 사실 오클랜드 에이즈는 올해 레드삭스와 우승을 다퉜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날스와 함께 월드 시리즈에서 아홉번 우승, 양키즈에 이어 두번째로 우승 경력이 많은 구단이다. 만약 양키즈와 에이즈가 둘 다 상장사라면 훨씬 적은 돈으로 성적도 우수한 에이즈의 주가가 더 높을 지도 모른다. 월스트리트식 가치 투자의 관점에서는 에이즈가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야구는 주식과 같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다. 야구장에서 만큼은 냉철한 머리보다는 뜨거운 가슴이 더 중요하다. 야구의 세계에서 이성보다 감성이 앞선다는 사실은 몇가지 `확률 계산`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미국인들이 야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감성이 만들어내는 의외성, 불확실성 때문이다. 야구장은 이성과 합리의 탈출구다. 그래서 야구장에서 만큼은 fuck 이나 asshole 같은 욕을 해도 어느 정도 용인이 되는 것이다. ◇의외성과 불확실성의 세계 야구의 핵심적인 속성이 의외성과 불확실성이라면 야구팀을 투자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상천외한 금융상품이 거래되는 월가에서도 프로야구팀을 IPO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까. 야구가 얼마나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특히 디비전 챔피언전이나 월드 시리즈 같은 `단기전`에서 어째서 의외의 팀이 우승하는 일이 많은 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양키즈가 ALCS 7차전에서 레드삭스에 끝내 패한 후 10월24일 뉴욕타임즈에는 흥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1952년 하바드대 수학과 강사였던 모스텔러는 미국 통계학회지에 `The World Series Competition`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레드삭스의 열렬한 팬이었던 모스텔러는 "왜 레드삭스같은 훌륭한 팀이 월드 시리즈에서 패하는 것일까. 정규 시즌 성적이 좋은 팀이 월드 시리즈에서 패할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항확률이론(Binomial Probability Theory)을 적용, "승률이 높은 팀이 월드 시리즈 같은 단기전에서 상당히 높은 확률로 패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25페이지에 달하는 이 논문은 야구 경기를 수학적으로 풀이한 최초의 논문이었다. 이항확률이론은 옵션 가격을 결정할 때 활용되기도 한다. 모스텔러는 정규 시즌에서 승률이 60%인 강팀일지라도 29%의 확률로 7번 붙어서 최소한 4번은 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월드 시리즈가 7전4선승이므로 객관적인 전략이 아무리 뛰어난 팀이라고 하더라도 `승리의 여신`의 변덕에 좌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00게임 이상을 벌이는 정규 시즌에서는 객관적인 전력, 승률이 팀의 성적을 지배한다. 승률(이길 확률)이 60%라는 것은 10번 싸우면 6번 정도는 이긴다는 뜻이다. 정규 시즌에서 10연패를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100게임, 200게임 게임 횟수(시행 횟수)가 늘어나면 결국 승수가 60게임, 120게임에 근접한다는 것이 수학이 말하는 승률(확률)의 개념이다. 월드 시리즈는 승률만으로 우승팀을 점칠 수 없을 정도로 시행 횟수가 적다는데 문제(재미)가 있다. 정규 시즌과 포스트 시즌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스텔러의 결론은 "단기전인 포스트 시즌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다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양키즈가 3번 먼저 이겨 놓고도, 레드삭스에 역전패 당하는 드라마같은 일이 벌어졌다. 3패 후 우승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보스턴 팬들이 "우리는 아직도 믿는다"는 플랙카드를 들고 팬웨이 파크(레드삭스 홈구장)를 가득 메운 것도 바로 이런 의외성 때문이다. 실제로 정규 시즌에서 성적이 좋은 팀이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할 확률은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 확률(50%)과 엇비슷하다. 오클랜드 에이즈의 매니저 빌리 빈도 "포스트 시즌에서 우승하는 일은 도박이다"고 말한 바 있다. 1969년 이전에는 메이저 리그가 단일 리그였고, 7전4승으로 우승 팀을 가렸다. 당시 정규 시즌에서 승률이 높은 팀이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 경우는 65번 중 34번으로 확률 50%를 약간 넘었다. 1969년부터 1993년까지는 월드 시리즈 전에 내셔날 리그, 아메리칸 리그 우승팀을 먼저 가렸다. 5전3승 나중에는 7전4승의 디비전 챔피온 시리즈를 거쳐서 월드 시리즈를 치뤘다. 이 시기 정규 시즌 승률이 높은 팀이 우승한 경우는 25번 중 7번으로, 확률이 28%였다. 이는 동전의 앞면이 연속해서 2번 나올 확률 25%와 별 차이가 없다. 1995년 이후 포스트 시즌은 8개 팀이 참가, 월드 시리즈까지 세차례 단기전을 펼친다. 동전을 세번 던지는 것과 유사하다. 정규 시즌 성적이 더 좋은 팀이 우승한 경우는 9번 중 단 한번 밖에 없었다. 동전이 연속해서 세번 앞면이 나올 확률은 8분의 1이다. 올해도 카디날스의 정규 시즌 승률은 64.7%로 레드삭스의 61%보다 높았지만, 우승컵은 레드삭스로 돌아갔다. 월드 시리즈에서는 `실력`은 물론이고 승리에 대한 `의지와 열정`까지 동원해야 우승할 수 있다. 팀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겠다는 강렬한 열정을 가지고, 마우드에 피방울을 흩뿌리며 역투한 커트 실링이 레드삭스의 다른 선수들을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열정이 3대0의 열세를 뒤집는 전설을 만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1918년부터 2003년까지 레드삭스는 월드 시리즈 우승을 단 한차례도 하지 못했다. 이것을 확률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같은 기간 양키즈는 무려 26번 우승했다. 레드삭스가 우승할 확률이 1%만 있다고 하더라도 100년 안에 한번은 우승해야 한다. 100번을 시행하면 1번은 기대하는 사건(우승)이 나타나야한다는 것이 확률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레드삭스같은 강팀의 우승 확률이 1% 이하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결국 그동안 레드삭스의 우승을 방해하는 확률 외적인 요소가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수학은 어쨌든 레드삭스의 우승을 예고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지독히 승운이 없었다`는 측면에서, 그것을 `저주(curse)`라고 불러도 하나도 이상할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