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회사채 인수 "자동차 외판원과 똑같다"

by이태호 기자
2008.02.01 15:54:36

비싸게 매입해 손해보고 팔아..발행 수수료로 만회
"기업들의 저금리 발행 욕구 영향..시장 현혹 우려"

[이데일리 이태호기자] 지난달 30일. 기아자동차(000270)는 액면가 1만원인 회사채 3500억원어치를 증권사들에 매각했다. 매매 직후 증권사들은 인수 물량의 상당부분을 9981원에 기관투자가들에게 다시 판매했다.

단 하루만에 증권사들은 0.19%(19bp)의 매매 손실을 기록한 셈이다. 전체 발행금액에 적용해 보면 무려 6억6500만원에 달하는 손실이다.

이러한 거래는 사실 회사채 시장에 관행처럼 뿌리내리고 있다. 더 낮은 금리에 발행하고 싶은 기업, 더 높은 금리에 사들이고 싶은 투자자, 그리고 우량고객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증권사의 합작품이다.



증권사들이 매매손실을 감수할 수 있는 배경은 '그래도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기아차 채권을 인수한 증권사들이 받은 수수료는 30bp(10억5000만원). 19bp 매매손실을 보더라도 11bp의 이득이 남는다.

▲ 액면이자율 6.9%에 발행이 확정된 기아자동차의 회사채가 발행 직후 7.1%의 수익률에 거래되고 있다.
그렇지만 애초에 공급(발행자)과 수요(투자자)가 만나는 적정가격에 매매했다면, 분명히 30bp의 수수료를 모두 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권사들은 종종 비싸게 사서, 싸게 팔면서 이 수수료를 '희생'시킨다.

그리고 시장에서는 통상 이러한 관행을 '수수료를 녹인다'고 표현한다.

수수료를 녹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좀 더 매력적인 금리에 발행하고 싶어하는 우량 고객사들을 얻기 위한 경쟁적인 '서비스'로 이해하면 쉽다. 자동차 영업사원이 자기 돈으로 '선팅'을 해주는 경우와 비슷하다.



또한 이러한 서비스는 높은 신용등급 기업일 수록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한 증권사 채권인수업무 담당자는 "A 등급 이상의 기업들 채권의 경우 대부분 수수료를 녹이고, 이익을 별로 남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래도 우량 기업들과의 관계 유지 차원에서 따를 수밖에 없는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관행이 시장을 현혹시킨다는 점이다.

이번 기아차 회사채의 경우 발행 금리(표면 금리)는 6.9%로 정해졌다. 앞서 발행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시장은 7% 밑으로는 어렵다고 관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 대에 발행했으니 회사 입장에선 고무적일 만 하다.

하지만 발행 직후 대부분의 회사채 매매 가격이 19원 떨어지면서 매매 수익률은 7.1%로 뛰었다. 쉽게 말해 1만원을 투자해 1년 뒤 1만690원을 받을 채권이, 9981원을 투자해 1만690원을 받는 채권으로 바뀐 것이다. 결국 시장은 여전히 7.1%대 수익률이 적정한 것으로 평가한다는 얘기다.

모응순 하나대투증권 채권리테일 팀장은 "일명 '수수료 녹이기' 관행은 발행 금리를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기업의 욕구와 증권사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진행되고 있지만, 분명 시장을 현혹시킬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