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최고 존엄’ 김정은 애연가인데…北금연법 강화한다고?

by김미경 기자
2020.11.06 11:01:00

2005년 금연법 제정…흡연금지 확대, 왜
金 몸무게 140㎏…건강 탓에 담배 끊나
국제사회에 정상국가 면모 강조 의도
어릴 때부터 흡연, 북한산 담배 애용해
때·장소·나이 불문 맞담배·줄담배 피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에 도착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담배를 꼬나문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때와 장소 불문, 동행자의 나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맞담배·줄담배를 피워 대는 흡연 행각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만하다. 대부분의 동정 사진에 포착된 그의 오른쪽 손가락에는 언제나 담배가 함께 한다.

그의 나이 서른하고도 여섯. 북한 서열 1위 ‘국가 최고 존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공식 일정마다 건강정보나 DNA 유출을 막기 위해 ‘전용 재떨이’를 휴대하며 담배를 피울 만큼, 그의 담배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다. 심지어 병원, 유치원은 물론이고 발화 위험이 높은 미사일 발사 시험현장에서도 담배를 즐기는 ‘열렬’ 애연가(愛煙家)이다.

그런 그가 이미 담배를 끊은 것일까, 아니면 끊겠다는 선언인가. 사회적으로 ‘남성 흡연’에 무척 관대한 북한이 최근 예전보다 강력해진 ‘금연법’을 채택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6일 북한 노동신문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4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전원회의를 열고 담배 생산과 판매, 흡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금연법을 채택했다.

강화된 금연법은 조문 31개로 구성됐으며 금연장소를 확대·지정하고 이를 어겼을 때 처벌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2005년 ‘금연통제법’을 시행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면서 이번에 한층 강화한 법을 공식 채택한 것이다.

이번 금연법 제정은 건강에 대한 개념과 의식이 높아진 데 따른 조치인 한편, 북한이 정상국가의 면모를 강조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인민을 위한 국가라는 점을 부각시켜 주민들은 물론 국제사회에 정상국가 지도자로서 인정받기 위한 조처라는 분석이다.

실제 북한은 흡연율 낮추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북한의 남성흡연율은 2006년 54.8%에서 2016년 37.3%로 크게 감소하는 추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인민들의 건강권과 생활권 보장을 위해 통제를 강화하는 측면”이라면서 “정상국가화를 지향하는 북한도 이를 법률개정 등의 형식을 취해 고쳐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건강 탓에 금연을 결심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가족력 때문이다.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모두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특히 흡연·음주를 즐겼던 김정일은 질병을 달고 살았다. 김정은도 가족력에 흡연, 과로, 스트레스 등 심혈관 질환 위험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가정보원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몸무게는 2012년 90㎏에서 지금은 140㎏대로 추정된다. 키가 170~172㎝로 알려졌으니 초고도비만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하기 전 새벽 5시께 중국 남부 난닝역 승강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 오른쪽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두 손으로 재떨이를 받쳐들고 있다(사진=TBS/연합뉴스).
관심은 평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흡연을 즐겨온 김 위원장이 금연법을 따를지 여부다. 북한 최고 권력자인 만큼 금연법에서도 예외가 될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이에 개의치 않는 행보를 보임으로써 최고 원수라는 점을 과시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북한 매체들은 최근까지도 김 위원장의 현지 지도 소식을 전하며 그가 손에 담배를 들고 있는 모습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 올 상반기 건강이상설 확산 후 20일만에 등장해 건재함을 과시했을 때도 김 위원장 손에는 담배가 들려 있었다.

지난해 2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로 가던 중국 난닝역 구내에서는 김 위원장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여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두 손으로 재떨이를 공손하게 받쳐든 모습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018년 방북 당시 김 위원장에게 금연을 권유했다가 분위기가 어색해졌다는 일화도 있다. 2012년 인민체육대회 남자축구 결승전 때는 임신한 부인 리설주 바로 옆에서 담배를 피운 장면도 유명하다.

다만 북한이 금연법을 제정한 만큼 관영 매체들이 김 위원장의 흡연 장면을 최대한 걸러낼 것이란 관측이다. 양 교수는 “금연법을 제정해놓고 지키지 않는다면 김정은도 인민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 “인민과 국제사회 시선에 때문에 당분간 조심할 것”이라고 봤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7년 즐겨피우던 ‘7.27’(사진=자유아시아방송).
김정은이 즐겨 피우는 담배는 북한 자국산이다. 아버지인 김정일이 영국 담배를 애용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집권 후 2017년까지 담배 ‘7.27’를 피우다 2018년 들어 ‘건설’로 바꿨고, 올해께 ‘아침’으로 교체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9년 하노이 2차 북미회담 당시에는 ‘건설’ 담뱃갑이 포착된 바 있다.

북한에서 ‘7.27’과 ‘건설’은 일반 주민이 접할 수 없는 간부용 담배다. ‘7.27’은 군과 당의 중급 이하 간부들에게, ‘건설’은 고급 간부들에게만 특별 공급된다고 알려져 있다.

‘7.27’은 한 상자에 9만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니코틴 0.7㎎, 타르 10㎎으로 독한 편. 북한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전승기념일(7월 27일)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아침’은 북한 담배치고 목 넘김이 부드러운 순한 맛이고 슬림형이다. 이 담배는 수출용으로 가격은 갑당 약 5200원 정도다.

김 위원장이 애연가라는 사실은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에 의해 알려진 바 있다. 후지모토씨에 따르면 김정은은 어릴 때부터 술, 담배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개석상에서 흡연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