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뜨는 화장품? 군마트(PX)를 보라
by김무연 기자
2020.10.23 11:05:58
장병 및 군 여성 가족 수요 모두 반영
PX, 화장품 트렌드 읽을 수 있는 주요 플랫폼
인기 제품 닥터지, 남녀 구분없이 사용 가능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화장품 및 헬스앤드뷰티(H&B) 업계가 ‘군스메틱’(軍+cosmetic)에 주목하고 있다. 피부 관리에 관심 갖는 군 장병이 늘어나면서 ‘군마트’라 불리는 PX(Post exchange)가 화장품 트렌드를 읽는 주요 플랫폼으로 급부상하고 있어서다.
23일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PX 매출 상위권은 화장품이 차지했다.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PX 매출 1~3위는 모두 화장품이었다. 1위에는 메디힐 ‘캘러스 멀티 골드 리프팅 크림’이, 2위에는 닥터지 ‘블랙 스네일 크림’(50㎖), 3위에는 닥터지 ‘레드 블래미쉬 클리어 크림’(70㎖)이 올랐다.
담배·주류 일색이던 PX 인기 상품에 변화가 생긴 건 지난 2017년부터다. 이때부터 화장품이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2017년 듀이트리 ‘달팽이 크림’이 매출 순위 7위에 안착하더니 2018년에는 화장품 3종이 10위권에 자리매김했다. 지난해에는 매출 상위권 10개 상품 중 무려 5개가 화장품이었다.
PX에서 화장품이 매출 상위권에 포진한 까닭은 젊은 남성 장병들이 피부 관리에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옥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군입대 시 가장 필요한 물품으로 ‘뷰티 용품’을 꼽은 응답자가 31%로 가장 많았다. 2018년 국방일보 설문에서도 PX 최고의 상품으로 화장품이 뽑히기도 했다.
군 장병이 지인을 위해 화장품을 대리 구매하는 일명 ‘역조공’ 수요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인터넷 뷰티 커뮤니티에는 주변 군인 가족에게 부탁해 PX에서 화장품을 싸게 구입했다는 후기가 줄을 잇고 있다. PX의 경우 면세 가격에 물품을 살 수 있다. 2만원 안팎에 판매되는 닥터지 스네일 크림의 경우 PX에서는 7000원에 살 수 있다.
| 2020년 1~7월 동안 PX 매출 1~3위에 오른 화장품들. 왼쪽부터 메디힐 ‘캘러스 멀티 골드 리프팅 크림’, 닥터지 ‘블랙 스네일 크림’, 닥터지 ‘레드 블레미쉬 클리어 크림’.(사진=각 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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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X 상품의 매출 순위를 뒤바꾼 주인공은 바로 닥터지다. 닥터지 제품들은 지난 2018년부터 꾸준히 PX 매출 10위권에 포진해왔다. 2018년 2개, 지난해 4개, 올해 1~7월 기준으로는 3개 제품이 순위에 올랐다. 특히 닥터지 블랙 스네일 크림은 2018년과 2019년 연속으로 PX 매출 1위를 기록했다.
닥터지는 피부과 전문의인 안건영 대표가 설립한 고운세상코스메틱이 지난 2003년 론칭한 더마코스메틱 브랜드다. 16가지의 피부 유형에 맞춘 기초 화장품을 주력으로 삼아 유명세를 탔다. 지난 2018년 스위스 최대 유통기업 미그로스 그룹에 300억원에 매각됐다.
닥터지의 인기 비결은 남녀 구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기초 화장품이란 점이다. 닥터지 관계자는 “피부과학적인 측면에서 지성, 민감성, 색조 침착, 주름과 같은 피부 고민은 남녀 상관없이 피부 처방이 같다”라면서 “앞으로도 남녀 관계없이 자신의 피부 유형에 맞춰 스킨케어를 할 수 있도록 권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의 적극적인 마케팅도 닥터지가 PX 인기 제품으로 등극한 이유로 꼽힌다. 닥터지는 일반 유통시장에서 닥터지 레드 블레미쉬 클리어 수딩 크림이 인기를 얻자 제품명과 일부 성분을 조정한 닥터지 레드 블레미쉬 클리어 크림를 군납용으로 개발하며 PX 플랫폼을 적극 이용했다.
유통업계에서 PX에 관심을 두는 까닭은 대부분의 남성이 군대에서 화장품을 처음 접하기 때문이다. 군대에서는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장병들은 기미, 주근깨를 비롯해 다양한 피부 트러블에 직면한다. 따라서 입대 전 피부에 관심이 없던 남성들도 뷰티 용품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제대한 남성들은 자신이 사용하던 화장품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향이 짙다. 올해 PX 1~7월 매출액 3위에 오른 닥터지 레드 블레미쉬 클리어 크림(70㎖)의 경우 같은 기간 매출액 기준으로 CJ올리브영에서 남성 고객이 가장 많이 구입한 스킨케어 제품으로 집계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PX 화장품 매출 추이를 분석하면 남성의 화장품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기초 화장품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초 화장품의 경우 남녀 경계가 급격히 허물어진 ‘젠더리스’(Genderless) 제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보습 화장품 시장은 닥터지와 같은 더마 제품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최근 화장품 매출을 추산할 때 남성용 화장품을 따로 계산하지 않는다. 따라서 PX 화장품 매출을 두고 역 조공이니 장병의 실수요니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다”라면서 “H&B 업체라면 PX에서 인기 있는 상품의 입점을 고려할 만하고, 반대로 제조업체는 PX에 제품을 납품해 입소문을 노리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