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재웅 기자
2012.01.17 15:49:23
'정치 테마주' 광풍에 증시·업체·투자자 모두 '몸살'
건실한 테마주들 마저도 '테마주'이유로 도매급 취급
실적과 전망 등 확실한 주가 상승 모멘텀 여부에 주목해야
[이데일리 정재웅 기자] "주주인데요. 테마주라고 해서 샀는데 왜 이렇게 빠지는 겁니까?" "저희는 그런 테마주가 아닙니다. 실적을 좀 봐주세요"
한 태양광 업체에 근무하는 최 모 팀장은 오늘도 전화기를 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답답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다. 매일 같이 걸려오는 투자자들의 전화로, 이젠 벨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댄다. 또 어떤 항의일까 두려움이 앞선다.
최근 우리 증시가 테마주 몸살을 앓고 있다. 오는 4월과 12월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정치 테마주'' 광풍이 불어서다. 기업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보다 ''대표이사가 누구랑 어떤 관계라더라''라는 소문만 듣고 몰려드는 투자자들로 증시가 휘청거린다.
급기야 금융당국도 테마주에 대해 칼을 빼 든 상황이다. 그만큼 투자자들이 테마주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기업의 가치와 사업성과는 전혀 무관한 ''설(說)''이 주가를 좌우한다는 점이다. 옷깃만 스쳐도, 사진만 찍혀도 나도 모르게 ''테마주''로 묶인다. 자고나니 ''유명주(株)''가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최 팀장은 "통화하다보면 답답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정치 테마주도 아닌데 ''테마주''라는 말만 듣고 주식을 산 투자자들의 문의가 빗발친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요즘 테마주가 아닌 것이 어디있느냐"면서 "실적이나 사업성은 안보고 잘 몰랐던 기업이 총선이나 대선 호재도 아닌, 영업 호재로 주가가 오르는 것인데 이런 것은 안보고 무작정 같은 테마주 아니냐며 달려드는 통에 일을 못할 지경"이라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최근 거론되는 정치 테마주와 실적이나 사업성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테마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유 없이 오르는 테마주와 사업성에 기초해 오르는 테마주는 기본적으로 ''테마''가 다르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 업체가 속한 태양광 테마주는 지난 16일까지 연초 대비 큰 폭으로 상승한 상태다. 태양광 대장주인 OCI(010060)는 17.16% 올랐고 넥솔론(110570)은 31.33%, 웅진에너지(103130)도 19.40% 상승했다. 한화케미칼(009830), 신성솔라에너지(011930), 오성엘에스티(052420) 등도 작게는 5%에서 많게는 20% 까지 올랐다. 작년 태양광 업체들의 주가는 평균 20%~70% 까지 떨어졌다.
태양광 업체들은 작년 유럽 재정위기와 공급과잉 이슈가 부각되면서 대표적인 ''문제 종목''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폴리실리콘 가격 반등과 OCI의 미국 초대형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 참여 등 가시적인 상승 모멘텀이 존재했다.
지난해 크게 주목 받은 바이오 테마주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바이오주는 ''실체가 없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실체를 조금씩 드러내보이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이런 움직임은 올해도 진행중이다.
코스닥 대장주인 셀트리온(068270)은 관절염 치료제인 ''레미케이드''와 유방암 치료제인 ''허셉틴'' 바이오시밀러가 지난해말 임상시험을 마쳤고 올해초 시판 허가가 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올들어 1.39% 상승했다. 메디포스트(078160)도 관절염 치료제 ''카티스템'' 시판 허가 전망에 18.03% 올랐고, 차바이오앤(085660)은 정부의 지원확대 소식에 5.57% 상승한 상태다.
결국 이들 태양광 테마주와 바이오 테마주는 정치 테마주와 달리, ''이유 있는'' 주가 상승 모멘텀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반면, ''정치 테마주''는 이런 사업성이나 기업의 실적과는 무관하게 주가가 급등하는 등 변동성이 커 자칫 해당 기업과 투자자 모두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정치 테마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정치 테마주로 분류된 한 업체 관계자는 "사실 우리도 우리가 정치 테마주인지 꿈에도 몰랐다"며 "시장에서 우리 회사의 기업가치가 아니라 대표이사와 대권 주자와의 인연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매우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또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정치 테마주로 분류되면서 이런 부분들은 전혀 부각되지 않는다"면서 "금융당국도 철저한 조사를 하겠다고 나서고 우리는 그저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손 놓고 앉아있을 수 밖에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한 증권사 스몰캡팀장은 "사실 테마주에 대해 언급하기는 조금 조심스럽다"면서도 "정치 테마주와 같은 사업을 영위해 묶여 있는 테마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여기저기서 테마주, 테마주 하다보니 여타 건실한 테마주들까지도 도매급으로 묶여 의혹의 시선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 테마주의 경우, 선거라는 모멘텀이 지나고 나면 그런 업체가 있었냐는 듯이 시장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이 속성"이라며 "투자자들은 이런 인스턴트성 테마주보다 사업성과 실적에 기반한 테마주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