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좌동욱 기자
2010.03.16 15:06:24
[이데일리 좌동욱 기자] 원화 외화 시장을 가릴 것 없이 시중에 돈이 넘쳐난다고 한다. 1년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상황과 정반대다.
하지만 위기 때와 같이 돈은 여전히 실물경제로 흘러가지 않고 금융시장 내에서만 헛바퀴를 돌고 있다. 은행의 자금조달 실무자는 미소를 짓지만, 자금 운용 책임자는 입이 바싹 마른다.
외화 자금시장으로 시각을 좁혀보자.
국내 시중은행들의 만기 1년 이하 단기외화 차입 가산금리(라이보 기준)는 2009년 1분기 평균 162.7bp(1bp=0.01%)에서 지난달 25.8bp로 1년 만에 6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8년 1분기 28.6bp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만기 1년을 초과하는 장기 외화차입 금리도 낮아지고 있고, 은행별로 편차가 있지만 외화예금도 대체로 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 흑자를 냈던 경상수지 여파로 국내로 들어오는 달러 자금 자체가 많아지는 탓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단기 외화 차입금을 스왑시장에서 원화로 바꿔 국고채 투자에 나서는 시중은행들도 나오고 있다. 외국계 은행 국내지점들이 국가간 금리차를 이용해 돈을 버는 재정거래와 유사한 방식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부터 시중은행 외화 자산과 부채간 갭(차이)이 벌어지고 있다"며 "일부 시중은행들도 스왑시장을 통해 외화를 원화로 바꿔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장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자금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며 "돈에 꼬리표가 붙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엄격한 외화 유동성 규제를 받고 있는 시중은행에서 이런 자금 운용이 문제가 될 소지는 적다. 오히려 규제 사각지대인 외국은행 국내 지점들의 과도한 재정거래가 위기 발생시 국가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다는 `경고`가 더 절실하다.
규제 역차별이 은행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불합리한 구조에 대해 정부는 단기적으로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시중에 풀린 달러가 역외로 빠져나가면 더 큰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유당국 관계자는 "자본시장이 개방된 현 시점에서 당국이 움직일 수 있는 활동 반경은 제한돼 있다"고 토로한다.
이런 자금흐름의 근본원인을 파다보면 종착역은 결국 지나치게 낮은 금리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역대 최저 수준이라는 기준금리가 1년 넘게 동결되고 있지만, 경제학 교과서와 달리 실물 경제는 좀체 살아날 조짐이 없다. 사실상 제로 금리를 유지하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 경제는 위태위태한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국내 은행 예금 금리가 떨어지고 국채가격이 치솟는 와중에도 시중 자금이 안전자산으로만 이동하는 `역(逆)머니무브`가 지속되는 배경이다.
자금흐름의 선순환을 따지자면 중앙은행이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흡수해야한다. 하지만 금리인상이 경기와 환율에 미치는 부작용까지 생각해보면 한국의 중앙은행만 따로 행동할 수 없다는 점이 고민거리다. 국내외 자본들은 이런 시장을 비집고 들어와 `먹거리`를 챙기고 있는 셈이다.
이달말 임기를 마치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후임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하다. 총재 인선을 두고 청와대가 너무 `뜸`을 들인다는 불평도 들리지만 누가 후임이 되든 당분간 한국은행 총재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처럼 선진국 `출구전략`만 좇아가면 되는 `모범답안`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