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을 넘으니 사스가 있었다"

by강종구 기자
2003.04.14 15:11:27

미 경제, 전후 자신감 상실..사스, 테러, 북핵 등 걱정만 태산

[edaily 강종구기자] 미국이 이라크를 사실상 완전히 장악했지만 미국 경제와 증시는 환호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라크가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대량살상무기와 테러위험 때문에 경제가 흔들린다고 걱정하더니 이제는 사스-테러-북핵문제 등 3각 편대의 불확실성이 미국 경제를 공습할지 모른다며 경고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증시는 투자자들의 불안함 심리를 그대로 대변했다. 100포인트 가까이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던 다우존스 지수는 매도물량을 견디지 못하고 한없이 미끄러지더니 결국 약보합권으로 밀렸다. ◇소비심리가 살아나 봤자 이라크 전쟁은 승리로 끝나게 됐다. 가장 우려하던 불확실성은 사라졌다. 이를 반기듯 미시간대학의 소비자신뢰지수는 지난 달 77.6에서 급등해 80선을 훌쩍 넘어섰다(83.2). 79를 예상한 전문가들을 무색하게 할 만한 호조였다. 소비자들의 신뢰가 살아났으니 쇼핑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를 할 만하다. 3월 소매매출은 전쟁중이었음에도 불구, 호조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실적도 매출은 줄었지만 순이익은 늘어 그리 나쁜 편이 아니었다. 주가가 내릴 이유가 없어 보였지만 투자자들은 막판에 매도쪽으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소비자신뢰는 으레 그렇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고 증시도 이에 동조하는 듯 했다. 다음주 발표될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 시티그룹, GM 등의 실적이 걱정됐을 거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1분기 실적보다는 그 이후를 더 우려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뱅크원인베스트먼트어드바이저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앤소니 찬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배팅을 하면 항상 잃는다"고 말했다. 소비자신뢰가 살아났다고 좋아할 게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 투자전문 사이트인 CNN머니는 미국 소비자들의 "참을 수 없는 쇼핑욕구"를 지적했다. 테러가 무서워 외출을 하지 못하면 서재에 가구를 들여놓고 경제가 어려워 금리가 떨어지면 집을 담보로 은행빚을 내서 스포츠 세단을 뽑는게 미국인이라는 주장이다. 이라크전쟁 때는 아마도 바그다드폭격의 생생한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60인치짜리 대형TV를 샀을 것이다. 전문가들이 걱정하고 있는 것은 소비자가 아니라 미국의 기업 부문이다. 기업들은 비용을 줄이겠다며 직원을 계속 해고하고 있으며 투자는 늦추고 있다. 이라크전쟁이 끝나가고 있지만 회복조짐은 보이지 않는다고 애널리스트들은 우려했다. 리만 브라더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이산 해리스는 "전쟁전에도 소비는 좋았지만 기업 부문은 나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쟁이 끝났지만) 똑같은 상황으로 돌아왔다"며 "최고경영자(CEO)들은 지금 사업을 확장할 때라고 확신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전쟁이 끝나니 사스가 있었다 미국 대기업 CEO들의 단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이 이달 초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CEO들은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2.2%로 지난 해 수준을 밑돌 것으로 예상했고 향후 6개월 동안 고용을 늘릴 것이라는 응답은 9%에 불과했다. 또 45%는 감원이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투자를 늘리겠다는 기업은 18%, 줄이겠다는 기업은 27%였다. 전쟁도 사실상 끝난 마당에 미국 경제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는 14일 파이낸셜타임즈(FT)에 기고한 글에서 아시아 각국을 뒤흔든 사스(중증 급성호홉기증후군 ; SARS)에 대한 공포심을 드러냈다. 로치는 “사스충격으로 아시아의 올 경제성장이 둔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세계 경제의 침체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아시아 경제는 세계 경제의 버팀목이었는데 사스 때문에 힘을 잃게 됐다고 로치는 주장했다. 로치는 미국과 유로존의 경제가 사실상 정체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마저 사스충격으로 성장이 둔화될 경우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반적으로 성장률이 2.5%를 밑돌면 리세션(침체)로 간주된다. 모건스탠리가 추정하고 있는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은 2.4%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사스의 ‘직접적인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고 CBS마켓워치는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사스충격을 예방할 수 있는 ‘항체’를 갖고 있지 않다고 우려하고 있다. 스타라츠하임글로벌어드바이저스의 도날드 스트라츠하임 사장은 “계량화하기는 힘들지만 세계와 미국의 생산측면이 모두 위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사망자는 없지만 사스로 의심받는 환자는 미국에서 166명이 발견됐다. 대부분 최근 아시아를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직장에서 사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이는 환자까지 등장해 의료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라크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있고 전쟁을 반대하던 유럽 국가들도 전후복구에 참여하려고 안달이다. 걱정하던 이라크유전은 비교적 안전하고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 테러조직도 아직 조용하다. 모든 것은 미국이 원하던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아직 안심은 금물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북핵 문제와 언제 있을지 모르는 테러가 불안심리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인터내셔널의 부사장 로버트 호마츠는 지난 11일(현지시간) CNN머니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에 주둔하는 문제는 매우 커다른 불확실성이며 위험성도 매우 높다”며 “북핵문제와 미국 및 해외에서의 테러위험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