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준금리 '전격' 인하..사상 최초 금리 '1% 시대'(종합)

by김보리 기자
2015.03.12 10:15:22

한은, 입장 급 선회해 금리 '깜짝 인하'...2.0%→1.75%
1월 소비자물가 사실상 마이너스.."경기 전망 자신없다"
환율전쟁에 한은도 뒤늦게 가담

[이데일리 김보리 기자] 전인미답(前人未踏), 한 번도 밟지 않은 기준금리 1% 시대가 열렸다. 지난 1950년 6월 한은이 처음 설립된 이래 64년 넘게 사상 첫 1%대 금리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2일 본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7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지 5개월 만이다.

이번 금리 인하 결정은 ‘파격’이다. 지난해 10월 금리인하 이후 넉 달 동안 소수의견조차 내지 않았던 데다, 시장의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은 컸지만 한은이 시장에 인하에 대한 시그널을 전혀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10일 채권시장 종사자 2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92.1%가 3월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한 바 있다.

◇ 한은 이번에도 정부·정치권 압박에 굴복

시장에서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했지만, 한은은 금리인하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월 “금리 인하 효과를 보려면 시차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면서 “그 효과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면서 2.0% 금리를 유지에 무게를 뒀다. 지난 2월에도 세계 각국의 금리 인하 흐름에 대해 “환율전쟁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면서 금리인하 행렬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이데일리 김정욱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점에서 금융통화위원회 전체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은의 입장은 지난 3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저물가 상황이 오래 지속돼 디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큰 걱정을 하고 있다”는 발언 이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장에서는 최 부총리가 이 발언을 통해 한은에 암묵적인 금리인하 압력을 줬다고 봤다.

정치권에서도 압박은 이어졌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1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전 세계) 통화 완화 흐름 속에서 한국 경제만 거꾸로 갈 수는 없다”며 금통위 전날까지 금리인하를 거듭 압박하고 나섰다.

한은은 이번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에 굴복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일관성 없는 금리 결정에 이번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에 입장을 급선회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8월과 10월의 두 번의 금리인하 역시 정부의 압력에 못 이겨 금리인하 시기를 실기하면서 경기 활성화 효과보다는 가계부채의 부작용만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1월 물가상승률 사실상 마이너스..“우리경제 전망 자신할 수 없다”



당초 동결이 유력시됐던 한은이 금리를 깜짝 인하한 것은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은은 1월 경제전망을 통해 지난해 4분기 일시적인 요인으로 경기가 악화됐지만 올 1분기부터는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1분기 가까이가 지났는데도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자 금리인하를 결정했다.

한은은 11일 의사록에도 “전년동기 대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및 분기별 GDP 순환변동치 기준으로 보면, 소비와 투자가 뚜렷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올해 중 우리경제가 당초 전망경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경기 악화를 우려했다.

정책당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저물가 상황이다. 지난 2013년 10월 0.9%를 기록한 후 13개월 연속 1%대를 유지하다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각각 0.8%를 기록했고, 2월 0.5%로 둔화되면서 3개월 연속 0%대에 머물렀다. 특히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담뱃값 인상분을 빼면 사상 첫 마이너스(-0.06%)로 떨어졌다.

1월 광공업생산은 3개월 만에 감소세(-3.7%)로 전환했고 소매판매도 전월보다 3.1% 줄었다. 특히 슈퍼마켓(-19.5%)과 대형마트(-15.6%) 백화점(-9.9%) 편의점(-6.1%) 등 내수 주력 업종의 판매 증가율이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 올들어서만 16개국 금리인하..美 조기인상설 만지작

올 들어 불과 한 달여 사이에 세계 16개 중앙은행이 통화완화정책 기조에 동참했다. 각국이 돈풀기 경쟁에 나선 상황에서 한국만 가만히 있으면 원화는 강세로 갈 가능성이 높다. 다른 국가의 돈 가치가 모두 떨어지니 한국 돈이 귀해지는 현상이다. 앉은 자리에서 수출기업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논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은이 지난 10일 내놓은 의사록에서도“우리나라의 수출 단가가 크게 하락한 것은 환율의 영향이 크다”면서 “특히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의 대일 수출과 대 EU 수출은 엔화와 유로화 약세로 크게 감소했다”면서 “엔화절하가 우리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더이상 간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조기 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6월 인상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한은은 이번달을 놓치면 금리를 인하할 시기가 없다는 공감대 역시 전격적인 깜짝 인하에 한 축으로 작용했다.

의사록에서도 “미국의 금리인상 기대가 국내 시장금리에 언제, 얼마나 반영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라며 “미국 연준이 과거 사례에 따라 정책금리 인상시점 이전에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인내심(patient)’ 문구를 삭제하게 되면 경제기초여건이 불안한 신흥국에서 자본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