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욕망 좇아봤자 일장춘몽이오
by오현주 기자
2012.09.07 16:04:16
연극 ''꿈''
조신 이야기 모티브
춘원 이광수의 변절 다뤄
신라-근대 오버랩 인상적
국립극단 삼국유사 프로젝트 첫 작품…16일까지 서계동 백장극장
| 연극 ‘꿈’의 한 장면. 조신 역을 맡은 장재호(오른쪽)와 평목 역을 맡은 안창환이 열연 중이다(사진=국립극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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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낙산사의 봄이다. 젊은 승 원효와 의상이 길가에 주저앉아 관음보살이 벗어던진 신발 한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두 번이나 관음보살과 마주했으나 알아보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는 원효의 너스레가 이어진다. 사실인 듯 허구인 듯, 그 익살의 수다가 마무리될 무렵 누군가가 보인다. 춘원 이광수다.
춘원은 소설 ‘꿈’을 집필 중이다. 그 안엔 삼국유사의 설화 ‘조신의 꿈’이 들어 있다. 그런데 소설에서 자꾸만 조신이 아닌 자신이 보인다. 일제강점기 그는 조선청년을 들끓게 했던 문인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청년들을 선동해 대동아전쟁으로 내보냈던 과오에 시달리고 있다. 친일분자라는 지탄에 불안해진 심리가 조신의 행적에 뒤엉켜 튀어나온다. 이제 저 멀리 조신이 보인다.
관음보살상이 멀찌감치 비추는 법당에서 조신은 평목과 바닥을 닦고 있다. 하지만 마음은 들끓는다. 속세의 여인 월례를 마음에 품고 있는 까닭이다. 결국 그는 성불수도를 버리고 월례와 도피행각을 벌이고야 만다. 파계승이 된 조신은 속세에 젖어 한때 안온하기도 했다. 그러나 추적자가 옭죄는 올가미까지 벗어던지진 못했다. 끝내 자신을 쫓아 온 평목을 죽이고 가정은 풍비박산나고야 만다.
연극 ‘꿈’은 ‘조신의 꿈’과 춘원의 ‘꿈’이란 두 기둥 사이에 놓인 인간 욕망의 근원을 더듬는다. 스스로 욕망을 좇은 이들의 일장춘몽에 대한 파멸적 서사다. 성(聖)과 속(俗)을 오가며 얻는 고뇌와 번민을 위해 무대는 이분됐다. 신라 낙산사의 조신과 근대 서울의 춘원은 때로는 별개로 때로는 밀접하게 중첩되며 시공간적으로 통합을 이룬다. 1000년을 거스르는 오버랩이다.
조신은 곧 춘원이었다. 욕망과 금기의 선을 지키지 못한 조신은 독립을 지키지 못하고 친일한 춘원과 시종일관 병치된다. 한낱 헛된 미몽인 걸 모르고 사로잡힌 꿈이 공통점이라면 차이점은 미몽을 깨달은 조신과 끝내 깨닫지 못한 것으로 그려진 춘원이다. 춘원의 고뇌는 그의 꿈속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조선놈의 이마빡을 찔러 일본피가 나올 때까지 격렬히 싸워라”고 부르짖던 그는 사냥꾼에 쫓기는 사슴에 빗대인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난 그는 기어이 속으로만 품고 있던 항변을 쏟아내고야 만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 어째서 기다리는 것은 반민족주의자, 친일분자 이광수인가. 조국 따위는 없다.”
그러나 춘원의 갈등은 끝까지 결정적인 해결로 연결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을 보자. “오늘은 해가 안뜰 거 같은데….” 춘원의 지인으로 낙산사 홍련암에 나란히 선 육당 최남선이 한탄인지 암시인지 모를 말을 내뱉는다. 이를 받아친 이광수의 독백도 다르지 않다. “언젠가는 뜨겠지. 우리는 못 보더라도 누군가는 보겠지.” 이 자리에서 자신을 ‘잘못 채워진 근대의 첫 단추’라 말한 춘원은 역사가 앞으로 잘못 채워진 단추들로 점철될 것이라 단정할 뿐이다.
연극 ‘돐날’ ‘냄비’ 등의 공동작업으로 화제를 모은 작가 김명화, 연출 최용훈이 모처럼 다시 만났다. 춘원의 강신일, 육당의 남명렬, 조신의 장재호 등이 내놓는 묵직한 연기도 오랜만이다. 원효와 요석공주, 의상과 신묘의 에피소드까지 넣은 내용은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다. 조각인 듯 벽화인 듯 형상화한 관음보살상은 무릎을 내려 칠 공연미학의 진수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복선 탓인가. 말미에 이르러서도 수습되지 못한 겹줄들이 머리를 누른다. 일장춘몽의 허탈함이 거기까지 미치나 보다. 16일까지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 1688-5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