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물가잡기 충성경쟁..`한국은행 머쓱하네`

by김춘동 기자
2011.01.06 13:54:59

`물가와의 전쟁`..기재부는 물론 공정위도 물가당국 자임
정작 한은 통화정책은 `발목`..물가안정 입지축소 지적도

[이데일리 김춘동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연초부터 크게 들썩이고 있는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정부 각 부처들이 너도나도 물가잡기 충성경쟁에 나섰다.

반면 `존재의 이유`가 물가안정인 한국은행은 정작 이런 분위기와 다소 동떨어져 있다. 정부의 5%대 고성장 목표에 발목이 잡혀 통화정책이란 가장 예리한 칼을 마음껏 휘두르기 어려워진 탓이다.

정부 각 부처들이 행정력을 동원한 물가억제에 나설 경우 본연의 임무가 물가안정인 한국은행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민을 위해 `물가와의 전쟁`이라는 생각을 갖고 물가억제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하면서 정부 각 부처들이 말 그대로 물가대책 경쟁에 나섰다.

특히 식료품과 농수산물, 유가 등 서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품목들의 물가가 줄줄이 오르면서 물가대책 경쟁은 더욱 불꽃을 튀기고 있다. 실제로 오는 13일 물가를 주제로 열리는 국민경제대책회의를 앞두고 물가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물론 지식경제부와 농림수산식품부 등 정부 전 부처가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우 아예 물가기관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공정위는 6일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해 물가감시를 위한 `가격불안품목 감시·대응TF`를 신설했다. 사무처장을 반장으로 시장감시국과 카르텔조사국, 소비자정책국 등 주요 3개국이 참여해 사실상 전체 공정위 차원의 조직인 셈이다.

취임사를 통해 공정위의 가장 중요한 임무중 하나로 물가안정을 제시한 김동수 공정위원장은 간부들을 대상으로 "공정위가 물가기관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직원은 색출해 인사조치하겠다"는 발언까지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조직의 설립목표가 물가안정인 한국은행은 다소 소외된 분위기다. 통화정책이라는 큰 칼을 휘둘러야 하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잠잠하다.

한국은행은 6일 올해 통화신용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물가안정에 주안점을 두겠다"고 밝히긴 했다. 올해 물가 전망치가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를 웃돌고 있는 만큼 당연한 목표설정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진의를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겉으론 물가안정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금리인상이라는 실제 액션에는 쉽게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대체적이었다.

여기엔 정부가 올해 시장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5%대의 고성장을 목표로 내건 가운데 한국은행 역시 보조를 맞춰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최대한 유지할 것이라는 기본적인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한 인위적 물가통제에 나설 경우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효과가 신통치 않은 것은 물론 가격체계의 왜곡으로 혼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집행부도 작년 1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공공요금 억제정책이 `물가의 하방 경직성을 강화하고, 변동성을 확대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의 부산한 물가잡기 움직임이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행보를 억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금리를 올리면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데다 5% 성장에도 큰 걸림돌이 되는 만큼 행정력을 동원해 사전에 물가잡기에 나선 것이라는 설명이다.

공동락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와 한국은행 모두 물가를 조심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 하고 있는 것 같다"며 "다만 방법론 차원에서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금리인상에 앞서 미시조치로 먼저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