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명수 기자
2004.07.08 13:26:43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지난달 US오픈 구경을 갔다. 내 평생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언제 또 실물로 볼 수 있겠는가. 큰 맘 먹고 티켓을 끊었다. 대회 공식 웹 사이트를 찾아봤다. 음료수나 음식은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5만명 관중을 어떻게 먹일 셈일까. 교통 문제는 또 어떻게 처리하려는 것일까.
그 주에 우연히 맨해튼 카네기 홀에 갈 일이 생겼다. 센추럴 파크 바로 아래 57번가에 자리잡은 카네기 홀은 생각만큼 근사하지는 않았다. 연주회 중간 화장실에 가려고 나섰다가 `시티 카페`라는 휴게실을 발견했다. 시티그룹에서 마련해준 카페란다. 시티그룹과 카네기 홀은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일까. 자꾸 엉뚱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시네콕 힐즈로 가는 길
월가도 접대를 한다. 중요한 고객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 접대도 비즈니스다. 골프도 그 중 하나다. AIG그룹은 뉴욕 인근에 호화 골프장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AIG 임원과 고객을 위한 전용 골프장이다. 다른 골퍼들은 아예 받지도 않기 때문에 골프장에 문패도 없다.
US오픈같은 메이저 대회도 접대용으로 안성마춤이다. 골프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대회이니만큼 골프를 좋아하는 고객들에게 티켓을 돌리면 효과 만점이다.
그러나 월가의 접대는 그 이상이다.
올해 US오픈은 뉴욕 롱아일랜드 사우스햄톤에서 열렸다. 이 지역은 부자들의 여름 별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US오픈이 열린 시네콕 힐즈 골프장은 바로 사우스햄톤 입구에 있었다.
시네콕 힐즈는 1891년에 만들어진 미국 최초의 18홀 골프장으로 현대 골프장에 비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더구나 사우스햄톤 같은 비싼 동네에 대규모 주차장이 있을 리 없다.
자동차를 몰고 골프장으로 가는 유일한 도로로 접어들자 "일반 관중들은 A 주차장을 이용하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A 주차장은 골프장에서 20여분 떨어진 지역 공항이었다. 여기서 셔틀 버스를 타고 골프장으로 이동하게 돼 있었다.
일반 관중들이 있다면 특수 관중도 있다는 뜻이 아닌가. 주최측은 `특수 관중`을 위한 B, C, E 등의 주차장을 별도로 만들었다. 미국 골프 협회(USGA)는 후원사(corporate sponsors)들에게 별로도 대회 입장권을 판매했다. 이 티켓을 가진 관중들은 골프장에서 비교적 가까운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
후원사들은 USGA로부터 넘겨받은 티켓을 자사의 고객들에게 접대용으로 돌렸을 것이고, 이 티켓을 가진 관중들은 골프장 입장 단계부터 `차별 대우`를 받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A 주차장을 이용하는 다수의 미국인들도 아무런 불만없이 셔틀 버스에 올라탔다.
유명 선수들의 멋진 스윙 동작에 감탄하는 사이 점심 때가 됐다. 대회장 곳곳에 설치된 식료품 판매대에 줄을 서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사야했다. 타이거 우즈의 신기한 벙커샷을 본 것은 정말 좋았지만, 핫도그 하나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야하는 것은 분명 고통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골프장 홀과 홀 사이 대형 천막이 군데군데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천막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는 마실 것과 먹을 것이 그냥 제공되는 듯했다.
"아하. 특수 관중용" 나중에 US오픈 관련 기사를 읽다가 이런 천막이 56개나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특수 관중들`은 아침식사로 벨기에 와플, 캐나다 베이컨, 머핀, 베이글을, 점심으로 안심, 게살 케익, 샐러드, 양고기, 닭고기 등을 즐겼다.
이들은 우아하게 한 손에 백포도주를 들고, 천막 앞에 설치된 파라솔 그늘에 앉아, 필 미켈슨이 5번 아이언으로 세컨 샷을 날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만약 내가 일반 관중으로 US오픈에 온 것이 아니라, 거래하는 투자은행의 초청으로 이곳에 왔고,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해보라. 앞서 말했듯이 사우스햄턴은 별장지대로 이름이 높다. US오픈을 보면서 하루 숙박료가 300달러를 호가하는 호텔까지 제공받는다면, 난감한 세일즈 상담도 저절로 해결될 것 같았다.
실제로 US오픈 기간 중 사우스햄턴의 호화 숙박 시설들은 초만원을 이뤘다. 이것도 모자라, 해변가와 시네콕 힐즈 인근의 일반 주택들은 불법 임대로 일주일에 최대 5만달러라는 엄청난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사우스햄턴 타운 조례는 한달 미만의 단기 주택 임대를 금하고 있다.)
◇골프와 비즈니스
이쯤되면 골프는 스포츠의 차원을 넘어선다.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금융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월스트리트는 골프 그 이상의 접대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월가가 골프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 스포츠 자체가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다. 만약 어떤 이유로 중요한 고객들이 `자치기`를 무척 좋아한다고 하자. 월가는 당장 자치기 전용 클럽(?)을 만들어 고객들의 환심을 끌 것이다. 클럽 하우스도 근사하게 만들고, 최고급 음식을 제공할 것이다.
자치기의 작은 자와 큰 자에도 상표가 붙어서, 나이키 작은 자, 타이틀리스트 작은 자, 탑 플라이트 작은 자 등이 생산될 것이다. 큰 자를 생산하는 업체도 생겨서 켈러웨이 큰 자, 테일러 메이드 큰 자, 혼마 큰 자 등이 경쟁을 벌일 것이다. 월가는 자치기 메이저 대회 후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고객들이 자치기를 좋아한다면 자치기도 골프만큼이나 고급스러운 운동으로 얼마든지 치장할 수 있다.
순수하게 스포츠의 입장에서 보면 자치기와 골프를 비교한다는 것이 우습지만,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면 뭔들 못하겠는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고객들이 자치기가 아니라 골프를 훨씬 좋아하고 있으니, 월가도 자연스럽게 골프를 매개로한 비즈니스에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