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했지만 각자 부모님과 살아요"…홍콩 별거부부 사상 최대

by권소현 기자
2016.03.21 11:06:00

높은 집세와 불확실성에 부모님에 얹혀사는 기간 늘려
출산율 낮아 가능…아낀 월세는 다른 곳에 지출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30대 초반인 짐 라이와 그레이스 라이는 지난해 결혼했다. 하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살림을 합치지 않고 각자의 부모님 집에서 살고 있다. 라이스의 친구 중에 세 명도 같은 선택을 했다. 홍콩의 살인적인 집세와 물가 때문에 이들처럼 결혼하고도 별거하는 커플이 갈수록 늘고 있다.

홍콩시립대학교 도시연구팀에 따르면 18~35세의 홍콩 젊은이 중 65%가 여전히 부모와 함께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이는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에 비해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홍콩 싱크탱크인 홍콩아이디어스센터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했으면서도 따로 사는 부부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가장 큰 문제는 집값이다. 홍콩은 좁은 땅에 비해 인구는 많아 적당한 주거공간이 전 세계에서 가장 적은 곳 중 하나다. 지난해 집값 중간값은 총소득의 19배에 달했다. 물론 아시아에는 전통적으로 여려 대가 같이 거주하는 문화가 있긴 하지만, 지난 10년간 집값이 끝없이 오르면서 부모님 집에 함께 거주하는 기간이 더욱 길어진 것이다.

아울러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 변화도 이유로 꼽힌다. 지링 홍콩시립대학교 연구원은 홍콩 밀레니얼(1980~2000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이 부모님 집에 얹혀살겠다고 선택한 것은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에 꿈과 현실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신중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본토와의 정치적 긴장은 고조되고 있고 중국 경제 부진으로 홍콩 경제도 둔화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올해 1~2% 성장하는데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앞날에 대해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젊은 이들이 부모와 함께 살겠다고 결심하는 데에는 낮은 출산율도 한몫했다. 홍콩 출산율은 여성 한 명당 1.1명으로 대체출산율을 크게 밑돈다.

밀레니얼 세대 입장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살면 월세를 아낄 수 있으니 소비여력이 커지고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뿐더러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신혼인 라이 부부는 “친구 중에서 월급 대부분을 월세로 쓰는 경우도 있다”며 “왜 그렇게 고통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