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했던 탄핵표결, 외로웠던 與 김상욱[尹 탄핵소추]

by김유성 기자
2024.12.14 18:29:26

尹 14일 탄핵표결 막전막후
국회 밖과 달리 국회 안은 차분한 분위기
우 의장 가결 선포에 野 안도, 與 침묵 지키며 퇴장
탄핵 찬성 김상욱, 외로운 섬처럼 자리 지켜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은 총 투표 수 300표 중 가 204표, 부 85표, 기권3표, 무효 8표로서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2024년 12월 14일 오후 5시 정각 우원식 국회의장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자 야당 의원들이 앉은 곳에서 “와~”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크지는 않았다. 대부분 의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 했다.

여당 의원들은 무거운 침묵을 지키며 본회의장을 나갔다. 어느 누구도 성토나 열변을 토하지 않았다. 무섭도록 고요해 보였다. 탄핵에 찬성했던 김상욱 의원만 홀로 남아 여당 의원들의 자리를 지켰다.

홀로 앉아 있는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황토색 점퍼)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도로와 여의도공원은 오전 시간부터 탄핵을 찬성하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국회 앞에는 대형 스피커가 달린 무대가 설치됐고 최신 K팝 음악이 나왔다. 분위기는 진지했지만 시민들의 얼굴은 밝았다.

국회의사당 정문 앞 무대
북적한 국회 바깥과 달리 국회 안은 차분했다. 국회 보좌진들 몇몇이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여도 야도 서로를 자극하지 않은 채 차분히 본회의를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다만 본회의장 앞은 높아진 취재 열기를 엿볼 수 있었다. 방청석 앞은 오후 2시 30분부터 대기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진·방송기자들이 방청석 앞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사다리 등의 장비를 가져다 놓았다. ‘펜기자’들도 2시 50분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 한 기자는 길어진 줄을 보고 “롯데월드네”라고 푸념을 하기도 했다.

본회의장에 입장하기 위해 대기 중인 취재진들
3시 30분이 되자 기자들의 방청석 입장이 시작됐다. 본회의장을 정면으로 사진기자와 방송기자들이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노트북을 든 펜기자들은 의자에 앉아서 본회의 개의를 기다렸다.

3시 45분이 되자 본회의장 전광판에 ‘제419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라는 문구가 나왔다. ‘2024년 12월 14(토) 16:00’라는 문구가 바로 아래에 켜졌다. 속기사들이 들어오고 국회 본회의장 내 직원들이 속속 자리에 앉았다. 본회의장과 방청석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3시 57분이 되자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이 가장 먼저 본회의장에 들어와 착석했다. 그 뒤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3시59분께 민주당 지도부 의원들이 입장했다. 방청석에 있던 카메라 기자들이 셔터를 터뜨렸다.

정확히 4시에 본회의장에 들어온 우원식 국회의장은 4시1분에 국회의장석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우 의장은 고개를 돌려 빈 자리를 주시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와 앉아야 할 자리였다.

4시 4분이 되자 여당 의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분 뒤인 4시 6분 우 의장은 본회의 개의를 선언했다. 이날 안건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단 한 건이었다. 제안 설명자도 대표 발의자인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한 명이었다.

김상욱 의원 바라보는 국민의힘 의원들 (사진=연합뉴스)
박 원내대표는 제안설명에서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1980년 선포된 비상계엄과 쌍둥이와 같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민들이 나서서 막지 않았다면 ‘1980년 광주’가 재현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안 설명 말미에 그는 “윤석열이 우리나라 최대 리스크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에 대한 자극적인 표현이지만 여당에서는 어느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본회의장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고성도 없었다. 체념한 듯한 분위기는 방청석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박 원내대표의 제안설명은 4시 27분에 끝났다. 투표는 4시 29분에 시작했다. 투표 시작과 함께 국민의힘 의원들이 우르르 나가는 모습이 보이자 방청석은 술렁였다. ‘혹시 단체로 퇴장하는 게 아닐까?’

우려와 달리 국민의힘 의원들은 투표소로 향했다. 그들은 그들의 표를 행사했다. 가장 먼저 권성동 원내대표가 투표를 하고 나왔다. 이후 권영세 의원 등 중진들도 투표를 마쳤다.

이날 여당 의원들 중에는 김상욱 의원이 눈에 띄었다. 본회의장 맨 앞줄에 앉은 그는 황토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의 황토색 점퍼는 검정색 수트를 입은 다른 의원들 사이에서 눈에 더 잘 띄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황토색 점퍼 사이로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모니터 하단에 꽂힌듯 보였다. 그의 옆을 지나는 동료 의원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의원들도 맨 앞줄에 앉은 그를 외면했다. 그도 구태여 다른 의원들과 악수를 하거나 붙잡지 않았다. 흡사 여와 야 사이에 있는 황토색 섬 같았다.

투표는 4시 45분에 완료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투표를 다했나?”라고 물었다. 명패함이 열리고 감표요원들이 명패 수를 셌다. 5분만에 명패 수 300매를 확인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전원이 윤 대통령 탄핵소추 투표에 참여했다는 의미다.

개표는 4시50분부터 시작했다. 9분여의 시간이 지나고 4시59분 우원식 의장에게 종이 하나가 건네졌다. 투표 결과를 담은 종이였다. 그 종이를 본 우 의장은 몇 초간 말을 하지 않고 정적을 지켰다.

윤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개표 중인 모습
정확히 5시가 되자 우 의장은 “총 투표 수 300표 중 찬성 204표로 가결되었다”고 선포했다. 우 의장은 “국민 여러분께서 보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함, 용기와 헌신이 이 결정을 이끌었다”면서 “이제 헌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 파면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의 연말이 좀더 행복하길 바란다”면서 “국민 여러분께 고맙다”고 말했다.

표결 결과가 발표된 직후 국민의힘 의원들은 모두 나갔다. 그러나 김상욱 의원만은 황토색 점퍼에 얼굴을 묻은 채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산회가 선포된 뒤에야 그는 회의장 바깥을 나갔다. 300명 의원 중 가장 무거워 보이는 발걸음이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표결은 그렇게 1시간여만에 끝났다. 지난 2022년 대선 ‘국민이 키운 대통령’을 내세우며 당선됐던 윤석열의 시대도 2년 반만에 허무하게 끝났다.

국회 본회의장 바깥을 나오자 국회의사당 정문 앞 무대에서 나오는 음악소리가 아련하게 들려 왔다. 빅뱅 지드래곤의 화려한 음악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유세 당시 모습 (유튜브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