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2020]②학대아동 A양·B군…'슬픈 알파벳 행렬' 언제까지

by박기주 기자
2020.12.24 10:40:58

창녕 아동학대, 목동 입양 여아 사망 등 국민 공분
부모 방치 속 화재·쓰레기더미서 생활하는 아동들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두가 혼란스러웠던 2020년. 음지에서는 여전히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아동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시민들의 신고로 발견된 아동들에 몸에선 멍과 골절 등 잔혹한 학대 흔적이 남았고, 많은 국민이 분노했다. 부모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끔찍한 사고로 이어진 사건도 연이어 발생했다.

경남 창녕 학대 피해 아동의 모습이 담긴 CCTV 화면. (사진=채널A 뉴스화면 캡처)
지난 5월 늦은 오후 경남 창녕의 한 거리에서는 온몸에 멍이 들고 얼굴마저 퉁퉁 부어오른 채 절뚝거리는 한 소녀가 발견됐다. 이 아이를 본 한 시민은 인근 편의점에 데려가 허기를 달랠 수 있도록 음식을 사주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 사건은 편의점 폐쇄회로(CC)TV에 담긴 피해자 A양의 모습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공분을 샀다. 11세 소녀라고 하기엔 너무 왜소한 몸집에 겉으로 드러난 다리에 보이는 멍까지 정상적인 돌봄을 받았다고 보기 어려운 모습 때문이었다.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즉각 수사에 나섰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A양은 의붓아버지(35), 친모(27)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A양의 목에 쇠사슬을 채우고 끈을 베란다 난간에 묶는 등 학대행위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A양이 베란다를 통해 옆집으로 넘어가 도망치기 전 이틀 동안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는 것이다. 계부는 A양이 화장실을 가거나 집안일을 할 때만 이를 풀어준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물이 담긴 욕조에 머리를 담그거나 불에 달군 쇠젓가락으로 발바닥을 지졌다. 이러한 가혹행위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화상과 멍 자국 등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발견됐다.

재판에 넘겨진 계부와 친모에게는 각각 징역 6년과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이들의 폭행으로 A양은 치아가 깨지고 양쪽 눈을 포함한 전신에 멍이 들었다”며 “이러한 부모의 폭행은 어린아이에게 쉽게 치유되지 않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남긴다”고 판시했다.

지난 10월엔 서울 목동 한 병원에서 16개월 여아 B양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의료진은 B양의 머리와 복부에 큰 상처가 있는 것을 보고 아동학대를 의심, 경찰에 신고했다.

검·경의 수사에 따르면 B양의 양부모는 지난 2월 피해 아동을 입양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자신의 친자녀에게 동성의 동생을 만들어주려고 입양을 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6월부터 이들 부모는 B양을 상습 폭행하고 학대하기 시작했다. 부검 결과 B양의 소장과 대장, 췌장 등 장기는 손상돼 있었고, 복부 내에 출혈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장기간 학대로 후두부에서부터 쇄골, 늑골, 대퇴골 등 발생 시기가 다른 여러 건의 골절 흔적도 발견됐다.

계모는 “아이가 밥을 먹지 않아 화가 나 배를 손으로 때리고, 아이를 들어 올려 흔들다가 떨어뜨렸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부 역시 학대를 방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 부부가) 깊은 고민 없이 친딸과 터울이 적은 여아를 섣불리 입양했다”면서 “B양을 입양한 뒤 양육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아 학대하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전남 여수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태어난 지 2개월 된 남자아기가 2년여 만에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7살 아들과 2살 딸이 오랫동안 쓰레기더미 속에서 생활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9월 인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집에서 보호자 없이 원격수업을 하던 C(10)군과 D(8)군 형제가 화마에 휩싸였다. 출동한 소방관에 의해 이 형제는 구조됐지만 전신 40%에 화상을 입었다.

이 불은 형제가 단둘이 집에서 끼니를 때우기 위해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홀로 형제를 키우던 어머니는 화재가 발생한 전날부터 집을 비운 상태였다. 이 어머니는 2018년부터 아이들을 종종 방임해 주민들이 신고한 적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지난 5월 어머니와 형제를 분리해 아동보호시설에 위탁하게 해달라고 청구했지만 법원은 분리 조치 대신 형제가 1년간 상담과 치료를 받도록 했다. 결국 또 다시 집에 남겨진 아이들은 부엌에서 라면을 끓였고, 화재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사건이 알려진 후 형제의 치료를 위해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다. 화상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형제는 둘 다 눈을 뜨며 회복하는 듯했지만, 동생은 결국 숨지고 말았다.

지난달 말 전남 여수에서는 차마 상상하기도 힘든 참담한 사건이 발생했다. 11월 11일 한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방임한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출동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들 E(7)군과 딸 F(2)양을 즉각 격리 조치했다.

이후 이 남매를 상대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기관은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F양이 쌍둥이이며, 다른 형제가 더 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이다. 경찰은 27일 해당 아파트를 긴급 수색했고, 냉장고에서 남자아이의 사체를 발견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남매의 어머니는 2018년 말 2개월 된 갓난아기가 숨지자 냉장고에 넣어 보관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자체가 집안에서 쓰레기 약 5t 가량을 청소할 정도로 집은 관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고, 남매는 이러한 환경에서 방치돼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