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핵폭풍'에 해외 떠나려는 中企들

by김정유 기자
2018.02.27 10:36:27

근로시간 단축 본격화에 '베트남 이전' 검토 기업 늘어
최저임금 인상에 근로시간 단축, "폐업 또는 해외이전밖에 답 없어"
근로자도 급여 줄어 부정적, '누굴 위한 정책이냐' 목소리도

적막감이 감돌고 있는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모습. 최근 최저임금 인상에 근로시간 단축까지 현실화되면서 이곳 부품 및 주물 중소기업들의 ‘한국 엑소더스’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김정유 기자)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근로시간 단축 대책이요? 한국을 떠나는 것밖에 더 있습니까? 환경이 훨씬 좋은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하기 위해 최근 적합한 부지를 찾는 중입니다.”

경기도 시화·반월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자동차부품업체 A사는 최근 베트남으로의 공장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이 16.4%나 인상된데다 근로시간도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들면서 더이상 한국에서의 경영 의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7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24시간 공장을 돌려야 하는 업종 특성과 40인 미만이라는 영세한 기업 규모를 감안하면 근로시간 단축은 A사에겐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특히 이번에 의결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30인 미만’ 사업장의 특별연장근로만 한시적으로 허용키로 했다. 40인 미만인 A사와 같은 ‘어중간’한 영세기업들은 법의 유예도 받지 못한다.

이날 반월산단에서 만난 A사의 배모 대표는 “이렇게까지 중소기업들을 사지로 몰고 있는데 우리가 굳이 한국에서 사업할 의미가 있느냐”며 “국내에선 더이상 자구책을 마련할 수 없어 최근 베트남 호치민에 있는 한 산업단지에 공장 이전 부지를 물색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베트남 산업단지 현장에 갔을 당시 공장 이전을 준비하는 비슷한 처지의 국내 중소기업 대표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가 있었다. 그는 “호치민 내 산업단지로 이전하면 부지 분양가가 1㎡당 60달러(한화 6만4000원) 수준에 불과하고 50년 장기계약도 맺을 수 있다”며 “최근 최저임금 인상에 근로시간 단축까지 겹치면서 베트남으로 빠져나가려는 중소기업 대표들을 현지에서 자주 만난다”고 밝혔다.



특히 ‘3D’(힘들고·더럽고·위험한) 업종으로 분류되는 주물업계는 아사 직전이다. 인천 서부산업단지에 입주한 주물업체 B사는 근로시간 단축까지 현실화되면서 총 직원 90명 중 44%를 감원할 계획을 추진키로 했다. 이 회사는 연매출 200억원 수준에 수출 비중도 60%에 달하는 비교적 큰 규모의 주물업체다.

B사의 이모 대표는 “2명이 하던 일을 3명이 하자는 게 골자인데, 주물업종 현실상 외국인 근로자들도 잘 안 오는 판국에 근로시간 단축이 현실성이 있는 얘기인가”라며 “올초 인상된 최저임금을 납품단가에 반영도 못하는 상태에서 근로시간까지 줄면 근로자를 줄이고 사업 자체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소기업 근로자들도 근로시간 단축에 부정적이다.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20% 줄어도 통상임금보다 1.5배 많은 시급을 받는 연장·휴일근로가 없어지면 오히려 급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안산 소재 금형업체 C사의 한 근로자는 “우리 회사 직원들의 평균 나이가 58세나 될 정도로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일자리를 나누자는 얘기인가”며 “우리 근로자들 입장에선 당장 살아갈 수 있는 급여가 줄어드는 것이 더 큰 위기”라고 걱정했다.

이처럼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위협적인 압박이지만 현실적인 대응방안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 산업단지 현장에서 만난 기업인들은 “위법자가 되든지 해외로 나가든지 둘 중 하나 밖에 방법이 없다”며 “이번 정부가 정책 목표 달성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정책 대상자들부터 더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정욱조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베트남 등 해외로 나가려는 중소기업들의 이야기가 요새 많이 들린다”며 “국회가 우리 중소기업계 요구사항이었던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특별연장근로 8시간 확보 등을 허용해준 것은 다행이지만, 휴일에도 쉬기 어려운 서비스업 종사자나 인력이 부족한 영세기업의 상대적 박탈감과 비용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