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헤지펀드, 모직-물산 합병에 '복병'...차익 노린 분쟁?

by정병묵 기자
2015.06.04 11:12:34

[이데일리 정병묵 임성영 기자] 미국계 헤지펀드가 제일모직(028260)과 삼성물산(000830)의 합병에 반대의사를 표시하며 돌발변수로 등장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외국 자본의 시세 차익을 노린 분쟁으로 합병에 차질이 될 만큼 큰 이슈는 아니라고 진단했지만 삼성물산 주가가 크게 오르고 있어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4일 삼성물산의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이 회사는 미화 260억달러(한화 약 29조원)을 보유한 헤지펀드다.

엘리엇 측은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 했을 뿐 아니라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으며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고 밝혔다. 즉, 자사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이 저평가받았다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분 보유가 헤지펀드의 성격상 경영권 참여가 아닌 삼성물산 주식가치를 더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보고 있다. 분쟁을 통해 주가를 띄워 차익을 남기겠다는 의도다 크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의 A연구원은 “이번 합병이 경영권 분쟁 이슈로 진행되면 삼성물산 주가는 당연히 오를 수밖에 없다”며 “해당사의 삼성물산 지분율이 7%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의도는 뻔해 보인다. 합병에 차질을 빚을 만한 이슈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번 합병에서 관심을 끄는 이슈인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통한 제동도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은 작년 삼성중공업(010140)과 삼성엔지니어링(028050) 합병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좌절된 바 있으나 이번 경우는 상황이 다소 다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계획안에 따르면 주식매수청구 규모가 1조5000억원을 초과할 경우 합병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액은 제일모직이 보통주 1주당 15만6493원, 삼성물산이 보통주 1주당 5만7234원, 우선주 1주당 3만4886원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제일모직의 경우 대주주 지분이 많고 삼성물산 주주입장에서도 장기적인 성장성 측면에서 긍정적이기 때문에 청구권 행사를 통한 무산 우려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특히 양사의 주가는 행사가를 훌쩍 뛰어 넘어 주주 입장에서 청구권을 행사할 명분이 별로 없다는 것.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이 (엘리엇의) 요구에 맞춰서 행사가를 올려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얘기”라며 “아무래도 단기 자금이고 법적 강제성을 가진 지분율도 아니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박선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주식매수 청구가격을 훨씬 넘어서기 때문에 개인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이유가 없어진다”며 “합병을 반대하는 주주들을 대표해서 깃발을 들고 선두로 나선 것 같은데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모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주식을 더 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어차피 삼성그룹이 지배구조 확립을 위해 이 단계를 넘어서야 하는 만큼 삼성 입장에서 신중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C연구원은 “만약 노이즈가 생겨 시민단체 등과 힘을 합쳐 주식을 매집한다면 일이 커질 수 있다”며 “이를 방지하려면 삼성그룹 입장에서 조심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삼성물산도 이날 “다양한 주주들과 소통하며 기업 가치 제고에 노력하겠다”며 입장을 내놓았다.

한편 이번 이슈가 당분간 삼성물산 주가에는 ‘호재 아닌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삼성물산 주가 상승에 따라 제일모직 주가도 덩달아 뛸 것으로 예상된다. 엘리엇의 지분 보유 소식이 알려진 뒤 이날 오전 10시48분 현재 삼성물산은 10%대로 강세 전환했다. 제일모직도 7% 오름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