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장순원 기자
2011.01.21 15:14:39
정유 4사 작년 영업익 4조 육박..정부 `공세 전환`
정유업계 여론 향배 촉각..낮은 수익률 강조할 듯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국내 정유회사들의 실적(작년치) 발표를 계기로 정부와 정유사 간 `기름값 논쟁`이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정부는 정유사 실적발표를 계기로 최근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반전을 노린다는 복안이다. 막대한 이익규모를 부각시키며 정유사들을 압박하는 동시에 세금 인하 논쟁으로 번진 최근 분위기를 정유사 유가인하 쪽으로 튼다는 계획이다.
반면 정유사들은 늘어난 수익 탓에 여론이 돌아설까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책 마련에 부심 중이다.
21일 정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SK에너지(096770)(이달 1일부터 SK이노베이션(096770) 등으로 분사)는 지난 20일 실적발표를 마쳤고, S-Oil(010950)은 27일, GS(078930)칼텍스는 다음달에 실적발표에 나선다.
증권업계에서는 정유 3개사가 3조7000억원 정도 영업수익을 남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비상장사인 현대오일뱅크가 지난해 1000억~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보여 정유 4개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4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출처 : 증권업계 컨센서스(2010년 실적 추정치)
석유 부문만 따로 때내어도 정유 3사는 2조원 가량의 영업수익을 거뒀다. 지난 2009년에 이들 정유 3사가 석유부문에서 700억원 가량의 영업적자를 냈던 것에 비하면 큰 폭의 증가세다. 석유부문 영업이익률도 2.4~3.2%로 늘어났다.
이같은 실적 개선은 지난해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제품가격과 원유가격의 차이인 정제 마진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정헌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2009년에는 설비를 늘려 생산량이 증가했으나 수요가 많지 않아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며 "지난해에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수익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실적을 가장 반기는 곳은 다름 아닌 정부다. 최근 대통령까지 나서 "기름값이 묘하다"며 유류 가격을 내리라고 압박했지만 의도와는 달리 유류세로 불똥이 옮겨붙던 터였다. 때마침 나오는 실적을 계기로, 정유사의 막대한 이익규모를 부각시켜 반전을 노린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남는게 없어 기름값을 내릴 수 없다는 정유회사가 천문학적 수익을 내고 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라며 "지난해 실적이 공개되면 여론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점 상태인 정유사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는지 원가구조를 꼼꼼히 살펴보는 동시에 기름값을 낮추도록 유도하기 위해 가격책정 방식 등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석유제품 가격 결정이 합리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본격적으로 점검하는 범부처 차원의 정부 태스크포스(TF)팀이 가동된 상태기도 하다.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진 정유업계는 대책 마련에 부심이다. 최근 고유가 논란으로 정유사가 기름값을 내리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천문학적인 수익 규모가 공개돼 여론의 시선이 쏠릴 경우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얼마 전 현대오일뱅크가 파격적인 성과급 지급에 나서자 여론의 눈총을 사기도 했다.
정유업계는 기존 대응 논리를 강조한다는 복안이다. 가격을 내릴 여지가 있는 지 살펴 보겠지만 정유사 마진을 모두 포기해도 사실상 리터당 최대 20원 이상 내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기름값을 내리려면 유류세를 낮춰한다는 논리다.
아울러 올해 수익이 급증한 것이 아니라 지난 2009년이 최악이었다는 점을 강조할 방침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플랜트 설비 증설과 해외 자원개발에 들어가는 뭉칫돈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최소한의 수익"이라며 "지난 2009년처럼 적자가 나면 정부가 메워줄 거냐"고 반문했다.
동시에 해외 메이저와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란 점을 알릴 계획이다.
이정헌 애널리스트도 "SK에너지의 석유부문 영업 이익률이 3.2%"라며 "이는 싱가포르 석유시장에서 영업하는 글로벌 플레이어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기름값을 내리려면 유류세도 낮춰야 하는데, 기업만 부담을 지라고 하는 것"이라며 "정책 당국자의 시야가 물가에 맞춰서 있어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