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우리 시대의 고졸들
by김국헌 기자
2007.08.27 16:54:51
[이데일리 김국헌기자] 지난 두 달간 참 많은 유명인들이 학력을 위조하거나 잘못 알려진 학력을 방조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사회는 큰 충격에 사로잡혔습니다. `신정아 사건`을 신호탄으로 아직까지 이 사건의 배후 확인이 한창이고, 아직 잡히지 않은 `학력 위조범`들을 향한 언론과 검찰의 조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폭로된 학력 위조 사실의 진위를 놓고도 참 말들이 많습니다. 국제부 김국헌 기자는 외신에까지 보도될 정도로 논란이 된 이번 학력 위조 사태를 `우리 시대의 고졸`을 바라보는 시선을 재정립하는 기회로 삼자고 제안하는데, 한 번 들어보시죠.
얼마 전 한 지인이 맞선 자리에 나온 남성이 부담스러워할까봐 박사 학력을 석사 학력으로 `위조`했다고 고백해 같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은 적이 있습니다. 함께 있던 이들은 한국 사회에 편견이 많다는 점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판이니 이래저래 고등학교만 졸업한 학력을 가진 유명인들이 학력 위조의 유혹을 이기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동정했습니다.
`동정론`에서 더 나아간 사람들은 그러고보면 새삼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고졸 출신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상기했다고 합니다.
특히 대학과 주변 지인들이 적극적으로 학력을 `높여 준` 것을 적극적으로 정정하지 않아 입방아에 오른 정덕희 명지대 사회교육원 교수와 연예인 최수종씨는 실력만큼 많은 이들의 동정을 받는 편이었습니다. 정 교수는 고졸이라고 밝혔지만 주변에서 대졸로 위조한 경우이고, 최씨는 외국어대학에 합격한 건 사실로 밝혀졌죠. 개인사정으로 등록과 졸업을 못했다고 합니다.
| ▲ 동국대학교의 교수로 임용되면서 상반된 화제를 불러일으킨 신정아 전 교수(왼쪽·36)와 이윤택 교수(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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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름을 날리던 이들이 학력 위조의 흐름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들 편에 서서 `유능한 고졸`을 옹호하고자 적극적으로 `궤변`을 늘어놓을 생각인데, 한 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우선 정 교수나 최씨의 사례에서 보듯이 일부 유명인들의 거짓말은 사회가 돌을 던질 필요까진 없고, 개인이 자성해야 할 양심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사회까지 나서서 마구잡이식 `마녀사냥`에 나설 필요까진 없단 얘깁니다.
학자들은 거짓말의 종류를 열 가지 이상으로 구분해서 본다고 합니다. 예절상 하는 칭찬, 잘못된 사실을 고치지 않고 그냥 두는 것, 당사자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사실을 숨기는 것, 시치미 떼기, 허세, 과장 등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 모두 거짓말에 포함됩니다.
성경에서는 신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하지만, 학자들이 열 가지 이상으로 구분해서 본 거짓말의 다양성을 볼 때 인간은 거짓말을 안하고는 못 사는 상황이란 말도 됩니다.
정 교수나 최씨의 경우는 잘못된 사실을 묵인한, 즉 심각한 축에서 벗어난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덕적으로는 비판받을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처벌할 수 없는 `양심의 문제`였죠.
오히려 이번 사태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을 아주 극명하게 드러낸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지난 두 달간 뜨겁게 달궈진 학력 위조 사태는 높은 교육열을 자랑한 한국 사회가 얼마나 명문대 학위에 목말라 했고, 고졸자에게 높은 편견을 쌓아왔는지를 잘 보여줬습니다.
자신이 고졸이라고 밝혔지만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대졸자로 변신시킨 사례가 지극히 다른 분야인 정 교수와 최씨에게 나타난 것으로 볼 때, 한국사회의 `학력 강박관념`은 보편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정아 사건`으로 학력위조 사건의 시발점이랄 수 있는 동국대엔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으며 명성을 날린 이윤택씨가 최근 교수로 임용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학력이 `변변치 못해` 나이 어린 연예인들도 달고 다니는 `교수`란 두 글자를 이제야 이름 뒤에 달았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실력으로 인정받기가 위조된 학위증으로 인정받기보다 힘들다는 걸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 나쁜 점은 학력 위조 사태를 바로잡기 위한 조치들 같습니다. 검찰은 학원 강사와 외국 미인가 대학 학위 소지자들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각 대학들은 교원들의 학력 검증에 나섰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학력을 증명해주는 학력증명센터(가칭)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즉, 앞으로는 확실하게 학력을 검증해 거짓말을 못하게 만들겠다는 건데요, 실력으로 검증하는 문화를 만들기보다 학력에 더 쉽게 의존할 수 있도록 견고한 성벽을 쌓겠다는 것이란 생각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어른보다 아이가 더 자주 거짓말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유치한` 거짓말에서 멀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학력 위조`라는 저질의 거짓말이 만연한다는 건 어떤 면에선 한국 사회가 아직도 학력에 매달리는 `유아기`에 머물러 있단 말이 아닐까요. 이젠 여기서 벗어나 실력으로 승부하는 성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이건 어쩌면 초등학교 학생들도 알 만한 게 아닐까 싶어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