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과 尹대통령의 차이[생생확대경]

by김기덕 기자
2024.11.13 05:00:00

임기 후반기 시작하는 尹정부 최대 위기
국회 개원식·시정연설 패싱하며 야당 탓만
美 클린턴·노태우 정부 협치사례 본받아야
남은 임기 달성가능한 정책·국회 설득이 답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전설적인 슬로건을 남겼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그는 1992년 미 대선에서 모두의 예상을 꺾고 현직 대통령인 조지 H.W. 부시를 꺾고 당선됐지만, 이후 정치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2년 뒤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야당이었던 공화당이 압승하며 상·하원을 모두 차지하는 여소야대 국면을 맞았다. 재임 도전을 앞두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야당과의 협치였다.

그는 60년간 이어져 온 미국의 복지제도를 바꾸는 복지개혁법과 관련해 공화당과 방법론에서 큰 차이를 보였지만, 감세 법안을 양보하는 등 정치력을 발휘해 결국 초당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야당과 협상을 통한 중도적인 정책으로 많은 지지를 이끌어냈던 그는 퇴임할 때 지지율이 60%를 훌쩍 넘기며 역대 미 대통령 중 가장 높았다.

임기 반환점을 돈 윤석열 정부가 백척간두에 서 있다. 지난 대선 당시 불법 스캔들과 김건희 여사의 국정 개입 의혹 등이 정국을 관통하며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가장 낮은 10% 중반대까지 떨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국정 농단 사태의 시발점이 됐던 태블릿PC가 폭로될 당시 지지율과 같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상황은 엄중하다 못해 심각하다. 국민들의 분노는 임계점에 달했고, 야당은 온갖 술수를 동원하며 탄핵을 정조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현 위기 국면을 국회 탓, 직전 정부 탓을 하기엔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고, 또 이젠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올해 윤 대통령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국회 개원식을 불참한 데 이어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도 가지 않았다. 앞서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9월 대통령실 전 직원과 조회를 가진 자리에서 “내가 시정 연설을 가지 마시라고 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윤 대통령도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야당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 대통령을 망신주려는 행동은 정치를 죽이자는 얘기”라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이런 태도와 자세는 매번 입버릇처럼 “국민과 민생을 최우선”이라고 외치는 것과 상반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이다. 민생을 위한다는 국정과제가 다수 포함된 정부입법 통과율은 지난 임기 전반기 동안 역대 정부 중 최저인 30%를 밑돌고, 야당의 반대로 내년 정부 예산안 일부가 삭감되고 집행이 늦어지면 결국 국민이 피해를 입는다.

미국의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2020년 2월 하원에서 탄핵을 당한 상황에서도 국회에서 신년 국정연설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민주화 이후 첫 여소야대를 경험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당시 야당인 DJ(김대중)·YS(김영삼)·JP(김종필)를 수시로 만나 남북기본합의서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제 30개월 남은 임기 동안 윤 대통령이 선택할 카드는 많지 않다. 4+1 개혁(노동·연금·교육·의료 개혁·저출생)에 대해 국민의 지지를 받고 국회를 설득해 추진동력을 다시 얻기엔 남은 시간도, 현실적인 여건도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거창한 개혁을 추진하기보다는 민심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면서 소소하지만 달성 가능한 효용성 높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좋든 싫든 야당과 만나고 대화해야 한다. 리더십의 요체는 설득력이다. 이젠 대통령의 정치를 보여줘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