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다음 만남을 약속한 韓日정상

by김윤경 기자
2005.06.21 17:32:17

[edaily 김윤경기자] 한일 두 나라 정상이 경색된 양국 관계를 헤치고 21일 만났습니다. 지난 두 차례 셔틀외교 때와는 달리 지방 휴양도시가 아닌 청와대에서, `노타이`가 아니라 격식을 갖춘 정장차림으로 만난 두 정상은 덕담과 미소를 나누며 회담을 시작했지만 서로 다른 입장만 확인하고 말았습니다. 공공연한 전국민적 희망을 감안한다면 회담 결과는 적어도 우리 쪽에서 볼 땐 `실패`란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해석할 수 만은 없다는 것이 취재했던 김윤경 기자 생각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청와대 상춘재에서 가진 2시간 동안의 회담이 끝난 뒤 중간발표를 하는 자리에서 모두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습니다. `솔직` `진지`. 그 자체만으로는 일반적으로 긍정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직설을 피하는 외교의 장에선 이런 `직설적 표현`은 꼭 긍정적인 표현은 아닙니다. 특히 어제 회담 맥락 속에선 그렇지 못했습니다. 두 정상은 양국 관계를 경색시킨 주 요인들에 대해 다만 `각자` 솔직하게 입장을 표명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눴을 뿐 합의점은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두 정상은 상춘재에서의 2시간 회담에서 1시간50분을 야스쿠니 신사참배, 역사교과서 등 역사인식 문제 논의에 쏟아 부었습니다. `솔직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후에 정우성 청와대 외교보좌관 브리핑을 통해 들은 두 정상간 발언은 솔직했던 만큼 날도 서 있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민감한 사안인 신사참배 문제를 두고 오고간 얘기만으로도 사실 회담 분위기의 대부분을 읽을 수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야스쿠니 신사는 과거의 전쟁을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전시하고 있다. 이런 나라가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고 있을 때 인근 나라, 특히 과거 괴롭힘을 당한 나라 국민들은 미래를 불안하게 여길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며 신사참배 중단에 대한 강력한 요구를 담아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렇게 받았습니다. "나의 참배가 과거의 전쟁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게 아니라, 본의 아니게 전쟁에 참가한 많은 일본인들을 추도하고 앞으로 전쟁을 일으켜선 안되겠다, 하는 그런 다짐을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신사참배 하지 않겠다는 얘긴 행간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죠?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이 과거 전후 60년동안 비핵화원칙, 방위문제 등에서 주변국에 위협을 준 적이 없으며 군사력을 억제해 가며 경제발전을 추구해 왔다고 강조하기까지 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총리께서 신사참배를 어떻게 설명하시더라도 나와 국민들에게는 역시 과거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것이 객관적인 현실이다"라며 "일본 집권당 각료와 핵심 지도자들이 감정적 갈등을 제공하지 않도록 발언에 각별히 유의했으면 좋겠다"며 다시 한 번 지적했습니다. 회담장에 들어가기 전 날씨와 이부스키 회담장 얘기로 기껏 살려놓은 우호적인 분위기는 이렇게 중간발표장인 녹지원에선 거의 사라진듯 보였습니다. 노 대통령은 굳이 `낮은 수준`이라고 표현하면서 역사인식과 관련해 합의 두 가지를 이뤘다고 발표했습니다. 제2기 역사공동위 산하에 교과서위원회를 신설하는 것, 제3의 추도시설 건립 요구에 대한 일본측 검토 등이 그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그나마 이 사항은 회담 이전 양국 실무 외교채널을 통해 이미 조율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망감이 여실히 배어 있습니다. 게다가 고이즈미 총리가 제3의 추도시설 건립 검토를 `약속했다`고 발표했던 노 대통령은 곧바로 `약속`이란 말은 빼야겠다, 그것이 더 정확할 것이라고 수정했습니다. 약속했다면 이행돼야겠지만 노 대통령은 그에 대해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점을 이렇게 피력한 것입니다. 회담 결과는 지금까지 정상회담에서처럼 공동기자회견 형식이 아니라 두 정상이 `각자` 발표하는 선에서 간단히 마무리됐습니다. 기자들이 민감한 현안들까지 질문할 경우 분위기가 더 냉각될 수 있는 것을 사전부터 감안한 듯 청와대는 회담전 이미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만찬도 취재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통상적으로 이런 취재는 전체는 아니더라도 만찬 전 분위기 정도는 출입기자단이 취재할수 있게 허용됩니다. 그런데 이번 만찬엔 취재기자조차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취재기자가 들어가지 못하면 대변인이 브리핑을 하거나 자료 형식으로 설명을 하지만, 이 역시 밤 11시가 다 되도록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습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저녁 식사 자리에선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고만 전할 뿐이었습니다. 만찬 메뉴라든지 오고간 농담 등 가벼운 내용을 곁들여 결과를 발표하던 이전 경우에서 벗어난 것과 관련, 기자들은 만찬 분위기 역시 무거웠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저녁상에 역사인식 문제가 올라왔다면 결코 가벼울 순 없었을 겁니다. 그러고보면 이번 정상회담은 논의될 의제에 대해서도 공식 발표가 없었습니다. 정상회담 전 통상 정부 관계자들이 배경 설명을 해주고 예상 의제 등을 짚어주곤 하는데 이번엔 그 조차 없었습니다. 김 대변인은 회담 며칠 전까지도 "기다려 보라"고 했고, 하루 이틀 전에서야 "공식 의제는 없다. 다들 알고 있는 명백한 주제들이 얘기될 것"이라고 밝혔죠. 회담의 사전사후 진행방식이 기존 회담과 같아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이 `다름`은 한일관계의 특수성, 특히 여느때 보다 더 냉랭해진 최근의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담 결과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회담 결과가 좋았다는 건 아니지만 왜 신사참배 중단이란 결과를 도출해 내지 못했느냐, 실패했다 는 식으로 재단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중단될 뻔했던 셔틀외교의 지속을 확인했다는 점은 분명한 성괍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번 회담을 열었고 올해 말에도 일본에서 회담을 열기로 했죠. 장소와 복장 같은거야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대화를 통해 서로 의견을 맞춰가려는 노력이 계속될 수 있는 틀은 계속 유지되는 겁니다. 일본이 중국과 정상간 방문조차 없고, 우리도 이번 회담 전까지 `연기설`이 흘러나오는 등 성사가 불확실했던 점에 비춰보면 셔틀외교 지속 확인은 그래도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회담 결과를 성공과 실패로 이분하는 건 그야말로 단견일 거란 생각입니다. 다만 관계회복을 위해 양국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고, 특히 우리 입장에선 국제사회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본이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 지 관심입니다. 이제 막 세 술을 떴는데, 과연 몇 술을 더 떠야 배부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