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株소설]페북 제친 '천슬라', FAANG보다도 낫다고?

by고준혁 기자
2021.10.28 11:00:00

8월 이후 美 10년물 상승 때 테슬라가 FAANG보다도 더 '동조화'
"위험할 때 찾는 자산이 안전자산이다"
내년 EPS 전망치 추이, 페북 꺾이고 테슬라 상승세
친환경·반독점 등 정책은 테슬라를 민다
"PER 둘 다 높지만, 정치에서 극명히 달라"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한국인들이 고대하던 ‘천슬라’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지난 25일 테슬라가 주당 1024.86달러로 마감한 것입니다. 시가총액으론 1조달러를 넘겨 페이스북을 추월했습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보관액 기준 테슬라는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해외주식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전체를 하나의 회사로 본다면 우리는 테슬라의 10대 주주이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벌써부터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로 불리는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의 주식들보다 테슬라를 사는 게 낫다고 합니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발전 가능성이 더 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당장 내년 상반기 장사를 해서 주익을 내야 하는 주식 전문가들의 이야기입니다.

(사진=AP)
시장 정보를 제공하는 핀비즈에 따르면 27일 기준 테슬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131.11배입니다. 전문가들이 예상한 향후 1년 동안 벌어들일 이익으로 이 기업의 지분을 모두 사려면 131년이 더 걸린단 의미입니다. 애플이 26.28배, 구글이 26.19배, 페이스북이 19.76배입니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은 각각 51.02배, 51.07배로 높지만, 테슬라에 비해선 절반도 안 됩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 출처=Finviz
금리 상승기가 도래했다는 전망이 나오는 중입니다. 이른바 PER가 높아 고PER주로 불리는 주식들엔 안 좋은 시기로 관측됩니다. 성장주는 다른 주식들에 비해 지금 당장보단 앞으로 돈을 더 잘 벌 수 있겠다는 기대를 먹고 자랍니다. 그런데 미래에 벌어들일 돈의 가치는 금리에 영향을 받습니다. 금리가 낮으면 미래에 벌어들일 돈을 조금만 할인해도 되는데, 금리가 높아져 버리면 많이 할인해야 돼서, 결국엔 기업에 대한 평가가 박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올 상반기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1.74%대를 기록, 연중 최고점을 기록하는 상승기에 가치주가 성장주를 앞지른 배경이기도 합니다.

공급단의 원인으로 임금, 원자재, 물건값 등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돼 여름 이후 잠잠하던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내년 상반기까지 큰 폭 오를 가능성이 점쳐집니다. 고PER주가 또다시 고난을 겪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신동준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공급망 차질과 인플레 우려는 당분간 더 고조될 것으로, 에너지 재고가 충분치 않은 가운데, 북반구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며 “에너지 가격 상승, 반도체 등 부품공급 부족, 해상 및 내륙운송 차질, 노동력 부족 환경에서 가수요가 집중되는 연말 쇼핑시즌은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플레 대응을 위한 연준의 이르고 빠른 기준금리 인상 전망, 팬데믹 영향에서 벗어나고 있는 고용과 소비 회복 등에 미국채 10년물은 내년 1분기 중 1.85%까지 상승할 것이고, 이에 가치주의 상대적 강세를 예상한다”면서도 “다만 내년 초 겨울 난방 수요가 마무리되면 에너지 가격 안정과 함께 1분기 정점 인플레 우려도 완화될 전망”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TF : KODEX 미국FANG플러스(H).
그런데 짧은 기간이긴 해도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테슬라와 FAANG, 알리바바, 바이두 등 뉴욕 증시에 상장된 중국의 성장주까지 모두 담고 있는 NYSE FANG+ TM Index는 지난 8월 이후 금리 상승 구간에서도 큰 영향이 없었단 것입니다. 오히려 동행하는 모습이 포착됩니다. 테슬라만 따로 떼어서 금리와 비교하면 그 정도는 더 심합니다. 연초 금리 상승기 역 상관관계를 보이던 게 최근엔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PER가 100배가 넘는 테슬라가 오히려 FAANG보다도 금리 인상기에 안정적으로 상승했다는 얘깁니다.
이효석 SK증권 연구원은 “제가 정의하는 안전자산의 의미가 있는데, 한 마디로 얘기하면 위험할 때 찾는 자산이다”라며 “앞으로 기후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해서 혼란이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주가의 변동성이 작아서 안전자산이고 크다고 안전자산이 아니라고 볼 것만은 아니란 얘기기도 하다”라고 전했습니다.



이 연구원의 말에 따르면 최근 금리 상승기에 FAANG과 테슬라는 모두 안전자산의 측면을 인정받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면서도 테슬라는 FAANG과는 또 다릅니다. 오히려 상승 폭이 가팔랐는데, 성장주 내에서도 순환매가 일어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한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테슬라가 천슬라가 된 건 숏커버링부터 옵션 델타헤징 수요까지 들어오는 등으로 수급적인, 마이크로한 요인들이 많았지만, 테슬라는 돈을 못 벌때와는 다르게 이익이 나고 잉여이익금이 쌓이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종목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FAANG과 비교하면 FAANG은 팬데믹 이후 실적 급등세가 잦아들고 있고 금리 상승 부담도 있는 반면, 테슬라는 렌터카 회사 허츠가 10만대를 구입하는 등의 이벤트들을 받으며 다르게 가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실적의 절대치는 아직 FAANG을 따라오지 못하겠지만, 이제 막 실적을 내고 있고 그것도 시장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는 면에선 테슬라가 더 우월하단 겁니다. 둘을 가를 중요한 지점은 기술이 아닌 정치입니다. 거대 플랫폼을 대상으로 하는 패키지 반독점 법안의 통과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6월 11일 미국 하원에서 관련 법이 통과되고 이틀에 걸쳐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습니다. 최종 통과까지 관문이 남아 있지만, 내년 상반기 실제 통과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탄소 저감을 위한 주요국의 정치적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오는 31일 열릴 연중 최대 기후 행사인 COP26가 주목됩니다. 박기현 SK증권 연구원은 “이번 COP26은 트럼프 때 이탈했던 미국이 회의장에 복귀하고 신기후체제의 원년이란 것이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독점, 친환경이란 정치적 이슈는 테슬라에 모두 이롭습니다.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까지 금리 인상기로 본다면 가치주가 성장주보다 유리한 국면인 것은 사실로, 이런 맥락에서만 봤을 때 테슬라와 FAANG은 방향성에선 같이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테슬라는 규제 리스트에서 자유로운 반면, FAANG은 독점 규제에 얽메여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반독점법이 들어가면, 페이스북의 경우 지금 메타버스 관련한 신사업을 키운다고 하는데 과거처럼 ‘메타버스 관련된 작은 기업이 뭐가 있나. 인수해야지’라는 전략은 써먹을 수 없게 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펀드매니저들도 같은 이유에서 내년 상반기 FAANG보단 테슬라를 택하겠다고 전했습니다. 한 자산운용사의 주식운용본부장은 “‘아마존 반독점 역설’이란 논문으로 파장을 일으킨 리나 칸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으로 임명되고, 반독점 법안이 통과될 예정이기 때문에 FAANG은 정책에 비우호적인 게 맞다”면서 “반면 테슬라는 정책적 뒷받침을 받는 전기차에서 글로벌리 성장 중이고 시장 점유율도 늘려나가며, 자율주행에서도 독보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똑같이 PER가 높은 성장주이지만 정치면에서 극명하게 다른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다른 펀드매니저는 금리 상승기 PER가 100배 이상인 테슬라를 들고 가는 게 부담스럽긴 하지만, 주가에 정비례하는 현금흐름이 창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고민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주가에 거의 1년 동안 이미 반영이 돼 있는 것 같고 분명 할인율 측면에서 긴축과 고금리가 좋진 않겠지만, 현금 흐름이, 이익이 나는 지점도 있다”라며 “테슬라를 줄여야 할지에 대해선 정말로 그렇게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