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하상주 기자
2010.03.04 14:33:29
[이데일리 하상주 칼럼니스트] 지금 미국의 통화지표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먼저 아래 그림을 보자.
위의 중앙은행의 기본통화량을 보니 2009년 무렵 약 8000억 달러 수준에서 갑자기 2조 달러 수준으로 급증한 후 지금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중앙은행이 화폐량을 발행하여 정부지원주택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을 사들이고, 그 대신 현금통화를 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중은행이 이 현금을 기초로 대출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앙은행에 예금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은 민간이 대출을 해가지 않거나 또는 은행이 대출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이 대출을 해가지 않는 것은 민간이 이미 너무 많은 부채를 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금리가 낮아도 더 이상 부채를 빌려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민간의 저축률이 올라가고 있다
위의 그림은 민간저축률을 그린 것이다. 이 저축률은 80년대 초에 12%까지 올라갔다가 그 뒤로 계속 낮아져서 2005년 이후에는 1% 수준 이하로까지 떨어졌다. 그러다 2008년 중반 주택가격 폭락 이후 다시 5%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즉 지금 미국에서는 민간의 부채/저축에 대한 기본 인식이 바뀐 것이다. 과거에는 자산가격의 상승으로 민간이 장래의 저축을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자산가격의 하락으로 장래의 소득을 걱정해야만 하는 단계로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민간은 부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야만 하는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이 단계는 갑자기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민간의 대차대조표가 균형을 맞출 때까지는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민간의 소비가 줄어든다는 말이다. 즉 민간의 소비/부채감소를 정부 소비/부채의 증가로 메워가고 있다는 말이다. 만약 민간의 소비를 정부 소비로 늘리지 않으면 경기가 죽을 것은 거의 분명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의 소비증가에 의해서도 경기가 잘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정부는 정부의 소비증가/부채증가로 정부의 부담이 늘어만 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지금 유럽에서는 일부 정부가 정부의 부채증가로 정부 신용이 위험한 상태에 들어가 있다. 실제로 지금 미국의 상황도 이들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아직 미국에는 이런 위험이 높아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신용시장에서 신용 위험의 수준은 낮게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 국가신용 위험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 대륙의 반대쪽에 있는 미국의 국가신용 위험이 낮게 평가받고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 나도 위험하지만 저쪽에 더 위험한 놈이 나타났다고 내가 덜 위험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가? 곧 나도 저쪽에 있는 저놈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