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정훈 기자
2005.10.31 14:18:33
열린우리당, 금산법 처리놓고 눈치보기 극심
`여당의 원죄` 혹은 `정체성의 혼란`
[이데일리 이정훈기자] `금산법`이라는 단어가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해질 정도로 금융산업구조개선법 개정안 처리문제는 이번 정기국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주제중 하나다.
아니, 보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아직 여·야를 포함한 국회 차원에서 논의되기 전 열린우리당과 정부 사이, 또는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공방이 오가고 있는 이슈라고 할 수 있다.
관심있는 일반인들이라면 대부분 숙지하고 있겠지만, 한 번 더 부연하자면 공방의 핵심은, 재벌계열 금융기관이 계열사 지분을 5%이상 취득하지 못하고 제한하자는 것이며 이 규정을 과거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초과지분 취득행위에 어떻게 소급적용하는가의 문제다.
결국 지금 단계에서 금산법 개정안에 대한 관심은 대체로 삼성그룹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는 셈이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검토되고 있는 방안은 크게 3가지로 나눠진다. 박영선 의원안대로 삼성생명과 카드 모두 5% 초과지분을 강제 매각토록 하는 것, 정부안대로 의결권만 제한하는 것, 절충안으로 삼성생명과 카드를 분리해서 대응하는 것이 그것.
그러고보면 현재 열린우리당은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다 검토하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의견이 다양해 뜻을 모으기 곤혹스럽다는 얘기다.
재경부는 의원안은 위헌소지가 있어 정부안을 바꾸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고, 청와대에서는 잘 절충하라고 훈수를 두고 있고, 재계에서는 강제 처분명령을 내려서는 안된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사공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은 왜 이토록 금산법 처리에 대해 힘들어 하고 여기저기 눈치를 살피는 것일까?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삼성 죽이기`라는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서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 열린우리당 정책위 한 관계자는 "이번 논의과정에서 과거 취득행위에 대한 소급적용을 규정한 부칙이 집중 부각돼 버려 금산법 개정안 처리가 마치 삼성만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어 부담스럽다"며 "그건 절대 아니다"고 항변했다.
이같은 언론과 일반인들의 시각이 열린우리당에 혼란을 가져오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달초 정세균 원내대표는 모 방송에 출연해 "장기적으로 삼성생명과 카드 모두 초과지분을 해소해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안은 이달중으로 당론으로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송이 나온 다음날 문석호 제3정조위원장은 "이달중으로 당론화하기 어렵다"며 말을 뒤집었다. 그의 설명인즉슨, 친재벌-반재벌이라는 이분법적 논쟁이 가열되고 있는 정 대표가 이를 조기에 진화하기 위해 욕심을 내서 발언했다는 것.
그리고 며칠이 지난후 고위정책회의에서 문 위원장은 11월 중순까지 당론을 확정하겠다고 보고하자, 정 대표는 "12월에 본회의에 의결해야 하는데 11월 중순에 당론을 정하면 어떻게 처리하겠냐"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삼성생명과 카드 초과지분 해소방안에 대해서도 열린우리당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초 박영선 의원이 대표 발의할 때 다수의 여당 의원들이 취지에 동의해 법안에 `싸인`을 했지만, 이후에 논의가 본격화되자 `정부안대로 하자` `절충안을 만들어보자` `박 의원안대로 강행하자`는 발언이 여당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이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답은 없었지만, 향후 예정된 공청회, 당정협의, 고위정책회의, 의원총회 등의 일정을 보면 분명한 원칙을 앞세우기 보다는 두루 의견을 모아 최대한 원만하게 처리했으면 하는 것이 속내일 듯하다.
여당 내부에서도 이런 하소연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에서는 정책수립에서 정부와 공조해야 하고 법안처리에서는 야당을 설득해야 하는 여당의 원죄라는 자위가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개혁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반성도 있다.
앞서 국정감사 증인채택 과정에서도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고위인사들의 채택을 요구했다가 최종 결정과정에서 한나라당의 `물타기`에 공조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던 열린우리당. 금산법 처리결과야 어찌되건간에 그 과정에서 보여준 열린우리당의 모습은 당내 자기혼란의 또다른 한면을 드러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