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 소유 땅 80년간 초등학교 부지로…대법 "무단점유 아냐"
by박정수 기자
2023.02.16 12:52:16
1942년부터 A씨 땅 일부 초교 부지로 사용
A씨 상속인들, 55년 지나 추완항소 제기
서울시교육청 "1942년 증여"…2심 "토지 증여 증거 없어 원고 패"
대법, 일부 파기·환송…"토지 처분관계 등 고려하면 무단점유 아냐"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아버지의 땅을 80년간 서울시교육청이 초등학교 부지로 부당하게 사용했다며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법원에서 결국 패소했다.
| 서울 서초동 대법원.(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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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민유숙)는 서울시교육청(원고)이 1942년부터 A씨(1965년 사망) 소유 토지를 초등학교 부지 가운데 일부로 점유했다고 주장하면서 A씨의 상속인들인 피고들을 상대로 취득시효 완성을 원인으로 소유권 이전 등기 절차의 이행을 청구한 사건에서, 서울시교육청 패소로 판결한 원심 판결을 일부 파기·환송했다고 16일 밝혔다.
피고들의 피상속인인 A씨는 생전에 경기 광주군 중대면 가락리(현재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소재 밭 2823평을 소유하고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은 A씨의 밭 일부를 1942년 11월 22일경부터 초등학교 부지로 사용했다.
이후 1950년경부터 진행된 농지분배 절차에서 이 사건 토지는 초등학교에 분배됐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1964년 A씨를 비롯한 초등학교 부지의 등기부상 소유자들을 상대로, 서울시교육청이 초등학교 부지를 1942년 12월 31일 각 증여받았다는 소유권이전등기 절차의 이행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A씨는 이러한 소를 제기하는 와중에 사망했다. 이에 A씨를 제외한 나머지 원소유자들의 경우 자백간주, 재판상 화해 등으로 소송이 종결됐고 이에 따라 서울시가 그 부지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A씨의 경우 공시송달 방법으로 소송이 진행돼 1심 판결이 선고됐다. 특히 해당 초등학교 교장이 1963년경 ‘초등학교 이전(1942년) 당시 A씨로부터 이 사건 토지를 기부 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된 재산조사서를 작성했다.
이후 55년이 지난 2020년 3월경에야 A씨의 상속인들은 1심 판결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에 상속인들인 피고들이 추완항소를 제기해 원심이 진행됐는데, 피고들은 진정명의회복을 원인으로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을 구하는 반소를 제기했다.
2심에서는 결과가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1942년 12월 31일 토지 증여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면서 서울시교육청이 그 땅을 소유할 목적으로 점유했다고 추정할 수도 없다며 원고 패 판결을 내렸다.
서울시교육청은 1942년 11월 22일 이후 소유의 의사로 공연하게 20년간 이 사건 구 토지를 점유했으므로 1962년 11월 22일 이를 시효취득했거나, 옛 토지구획정리사업법에 따른 환지처분의 공고가 있은 날의 익일인 1988년 12월 23일 이후 소유의 의사로 20년간 이 사건 환지 후 토지 전체를 점유했으므로 2008년 12월 23일 이를 시효취득했다고 주장했다.
토지의 경우 소유의 의사로 평온하고 공연하게 어떤 토지를 20년간 점유한 자는 등기함으로써 소유권을 얻을 수 있다고 민법은 규정한다.
이에 이 사건의 쟁점은 A씨 소유 토지에 대한 서울시교육청의 점유에 관해 자주점유(소지의 의사를 가지고 하는 점유) 추정이 유지되는지 여부다. 자주점유의 반대 의미는 타주점유로 소유의 의사가 없는 점유를 말한다. 즉 타인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점유이다.
대법원은 점유하게 된 경위나 점유의 용도, 위 토지와 함께 초등학교 부지로 사용되고 있는 다른 토지의 처분관계 등을 고려할 때 위 토지에 대한 서울시교육청의 점유가 무단점유라거나, 자주점유의 추정이 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은 “공시송달 방법으로 소송이 진행되는 등 초등학교 부지에 관해 증여를 원인으로 소유권을 취득하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조치를 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서울시교육청은 초등학교 부지를 원소유자로부터 증여받아 점유하고 있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토지가 A씨의 소유임을 전제로 1950년경부터 농지분배 절차가 진행됐으나 이러한 사정이 서울시교육청의 자주점유 추정이 깨어진다고 볼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며 “또 토지가 초등학교 부지로 사용된 이후 서울시교육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자료를 청구하는 등 소유권을 주장한 사정은 드러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