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진석 기자
2001.03.27 19:07:33
[edaily] 주식시장이 힘을 잃고 있다. 잠시 비빌언덕이 됐던 외국인이 몸을 빼는 듯한 태도를 취하자 지수는 그대로 누워버렸다.
거래소시장은 연이틀 18포인트 남짓 치솟았다가 사흘만에 내림세로 돌아서면서 상당부분을 까먹었다. 코스닥시장도 반등 하루만에 다시 되밀렸다.
해외증시의 동향과 외국인의 매수강도에 따라 등락을 반복하는 최근의 시장흐름에 대해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루살이(약세장)의 용틀임(단기반등)은 끝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망부석이 될 정도로 바다 건너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현재의 증시 체력으로는 추세전환 가능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견해를 달리하는 분석가들도 있다. 그러나 극히 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누가 주식을 사줄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꼭 집어 거론할 투자주체가 마땅치 않다는 대답이 많다. 그저 외국인만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현대건설에 대한 채권단의 출자전환과 그에 따른 감자 가능성, 리타워텍에 이은 한국기술투자 경영진의 횡령 및 주가조작 사건도 시장과 투자심리에 부담을 줄 전망이다. 우선 27일의 시황과 몇몇 변수를 짚어보자.
◇뒷걸음 친 거래소/코스닥/선물
이날 종합주가지수는 13.09포인트(2.40%) 떨어진 532.90포인트로 마감했다. 하루전 살짝 걸쳤던 5일 이동평균선(535.30P)을 다시 깨고 내려갔다. 외국인 매수세가 나흘째 이어졌지만, 이날 순매수 규모는 33억원에 그쳤다.
코스닥지수도 장중내내 보합권 등락을 거듭한 끝에 결국 0.91포인트(1.25%) 하락한 71.86포인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5일선(71.43P)은 지켜냈다. 개인(184억원)과 기관(39억원)은 팔고, 외국인은 대규모로 순매수(276억원)했다. 이날 외국인의 순매수는 지난달 2일(291억원) 이후 최대규모로 지수낙폭을 저지하는데 일조했다.
주식값이 오른 종목은 거래소(221개)와 코스닥(125개)을 합쳐 346개에 그쳤고, 주식값이 떨어진 종목은 거래소(596개)와 코스닥(432개)을 더해 1028개에 달했다. 하루 전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선물지수도 1.55포인트(2.29%) 떨어진 66.25포인트를 기록했고, 시장베이시스는 균형을 이뤘다. 외국인은 사흘만에 2309계약의 매도포지션을 취했다. 반면 투신과 개인은 각각 1303계약과 634계약의 매수포지션으로 맞섰다.
◇부담스러운 거래량
이날 거래소시장의 거래량과 거래대금은 각각 4억2272만주와 1조6812억원. 거래량은 연이틀 4억주를 넘어섰다.
외견상으로는 거래량이 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현대전자 단일종목 거래량이 1억1000만주를 넘어서는 등 거래량 상위종목에 편중된 매매를 감안하면 실질 거래량은 3억주를 밑도는 수준이다. 거래대금도 1조6000억원대로 매우 취약한 모양새다.
코스닥시장의 거래량과 거래대금은 3억4350만주와 1조4818억원. 광우병과 구제역관련 테마주에 몰린 데이트레이딩 매매분 감안하면 역시 평균치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거래량은 주가의 그림자로 불리운다. 그런데 거래량이 취약하다. 때문에 시장의 유동성과 체력이 대세몰이에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꼬리내린 삼성전자, 외국인 매수세도 둔화
선도주(주도주)의 존재 유무를 통해서도 시장을 읽을 수 있다. 최근 시장흐름의 버팀목은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는 지난 19일 19만원으로 마감한 뒤 닷새째(20일~26일) 오름세를 타면서 26일 마감지수는 21만7000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날 9500원(4.38%)이 떨어진 20만7500원으로 내려앉았다. 전일 삼성전자를 대신했던 현대전자도 이날 대량거래속에 9.74% 하락했다.
외국인의 매수강도도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외국인은 삼성전자를 지난 23일 2000억원 가까이 순매수한 뒤 ▲26일 696억원 ▲27일 105억원 등으로 매수강도를 급격히 떨어뜨리고 있다.
외국인은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의 움직임과 연계된 매매를 보이고 있다. 미국 반도체지수가 오르면 다시 매수강도를 높일 수도 있기 때문에 외국인 매수세의 둔화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경험상 선도주가 흔들리면 시장도 흔들리는 경향이 높았다. 더욱이 반도체 이외에는 대안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뒷걸음은 생각해 볼 대목이다.
◇또다른 복병
현대건설도 주목의 대상이다. 현대건설측의 경영권 포기와 자구이행을 전제로 한 채권단의 출자전환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불투명성이 제거된다는 측면에서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출자전환은 단순한 출자전환이 아니다. 감자조치도 뒤따를 전망이고, 이미 회계법인의 감사결과 자본이 완전 잠식된 상태이다. 대주주와 소액주주에 대한 차등 감자조치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소액주주는 부담이다. 또 출자은행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외국인의 은행주 매도는 지속되고 있다. 이날도 외국인은 하나 국민 신한 한미 주택은행을 내다 팔았다. 현대문제와 외국인의 은행주 매도는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또 현대건설의 출자전환 조치가 확정된다 하더라도 종료형이 아닌 진행형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진행추이를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이밖에도 예탁금(26일 현재 7조6608억원)의 연일 감소세와 리타워텍에 이은 한국기술투자 경영진의 횡령 및 주가조작 등 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저해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것도 투자심리에는 부담스럽다. 국내외 연구기관의 잇따른 경제성장률을 하향조정도 신경쓰이는 대목이다.
◇수학보다는 산수로 풀 때
어떤 분야든 전망은 머리 아픈 일이다. 전망을 맞추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맞추기 보다는 흐름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어려울 때 일수록 상황을 단순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복잡하게 수학 공식을 대입하기 보다는 상황을 단순화해 산수로 푸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대대수 전문가들은 경기를 어둡게 보고 있다. 해외증시도 방향설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주식을 사줄 마땅한 투자주체를 찾기도 어렵다. 증시내 수급도 꼬여 있다. 저금리 기조에도 불구하고 증시로의 자금유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추세선도 무너져 있다. 재료 보유 몇몇 종목만 추세를 유지하는 상황이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나아질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버티는 형국이다.
과연 주식 투자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 한 시점인지, 아니면 주식보다 때를 사는 자세가 바람직한 것인지 투자자 스스로 자문해 볼 일이다. 하루 하루 증시주변 상황을 지켜보면서 변화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