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교원자격 없는 전문가도 교단 선다? 고교학점제 앞두고 논란
by오희나 기자
2021.07.05 11:00:05
박찬대 의원, 학교 밖 전문가, 기간제교사 임용안 발의
교원단체 "교사 전문성 훼손…교원양성·자격체계 붕괴"
"과목선택권 중요"...일반국민은 전문가 교사임용 찬성
[이데일리 오희나 기자] 고교학점제 시행을 앞두고 학교 밖 전문가를 교사로 임용하는 법안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교사들은 교원 전문성과 임용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주장이지만 국민 절반 이상은 찬성하고 있어 갈등이 예상된다.
논란의 시작은 국회 교육위원회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월 9일 특정 교과에 한해 해당 분야 전문인력을 기간제 교사로 임용할 수 있도록 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부터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적성·진로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고 누적된 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다. 오는 2025년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면 학생들이 다양한 과목을 수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중등교원 자격증 표시 과목은 68개뿐이어서 인공지능(AI)·빅데이터·코딩 등 신산업 분야 과목을 가르치는 데 한계가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할 경우 전 과목에서 필요한 교사 수는 8만8106명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현행 제도하에서는 기간제 교원도 교사 자격증을 보유해야 한다. 교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은 자격증을 가진 교사와 함께 수업해야 한다. 이에 교육부는 법 개정을 통해 학교 밖 전문가를 한시적으로 채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부는 기간제 교사 채용 자격을 박사학위 소지자로 2년 이상의 교육경력이 있거나 특정 분야 전문가, 교육감이 정하는 자격 기준에 해당하는 자로 엄격히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박 의원의 법안도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 교육노동자현장실천 소속 교사들이 지난달 1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고교학점제 반대, 2022 교육과정 개정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교사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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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단체에서는 교원양성과 교원자격체계를 무너뜨리고 교직의 전문성을 훼손하는 법 개정안을 철회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 지난 5월 2일 전국 중등교원 92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교원 95%가 ‘무자격 기간제교사 도입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교사 전문성을 훼손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교사들은 “교사 전문성을 상실하고 교사의 질 하락을 초래할 것”이라며 “학생 인성과 지식 교육을 위한 자격을 갖췄는지 인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학교에서 일부 강사를 채용해본 결과 고교 교육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학생과 갈등이 발생했다”고 지적하고 “개정 법안은 국가 자격체계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반면 학부모와 일반 국민은 외부 전문가가 단독으로 수업하는 것에 찬성하고 있다. 국가교육회의가 지난달 22일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위한 국민참여 설문에 따르면 ‘교원 자격증은 없으나 일정기준을 충족하는 해당 분야 전문가’가 단독 수업을 하는 것에 대해 51.5%가 찬성했다. 이번 설문은 초·중·고교 교원과 학생, 학부모, 일반시민 10만1214명이 참여했다. 학부모와 일반 국민으로 범위를 좁히면 찬성 비율은 더 올라간다. 지난해 11월 국가교육회의가 공개한 미래교육체제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학생들이 원하는 다양한 내용을 배울 수 있도록 전문가에게 교사 자격을 개방할 필요가 있다’는 설문에 학부모 83.4%, 일반 국민 80.5%가 찬성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고교학점제에서 가장 중점을 둬야 할 사항으로 ‘학생의 진로적성에 따르는 다양한 선택과목 제공’(43.6%)을 꼽았다. ‘4차 산업혁명 등 시대상을 반영한 새로운 과목 확대’를 선택한 응답자도 14.2%로 나타났다. 이같은 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전문가가 과연 교사자격증을 가진 교사뿐인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오는 2025년 고교학점제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될 초6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회사를 다니다보면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는 주입식 교육으로 키워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사태로 원격수업을 하면서 교사에 대한 기대가 많이 무너졌다”며 “(고교학점제에)대학과 지역사회 연계수업 계획도 있어 다양한 교육이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교육계에서도 학생들의 미래 교육을 위해 교단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로나19로 4차산업혁명 시대가 가속화된 상황에서 활용도가 낮은 단순 암기식 교육보다는 융합교육을 통한 창의적 사고를 길러주는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섭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은 “교사들은 임용고사만 통과하면 평생 일하는 시스템이고 기간제교사도 교사자격증이 있으면 채용되는 구조라 임용시스템에서 검증된 것이 아니다”라며 “박사학위가 있고 강의경력도 있는 사람이 전문가가 아니면 과연 누가 전문가인가”라고 반문했다. 홍 연구위원은 또 “고교학점제는 교육시스템 전반을 수요자 중심으로 바꾸는 혁신적 변화”라며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선택형 교육과정을 택하고 있을 정도로 시대적 흐름에 따른 미래 교육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절차와 방식을 만드는 첫 번째 논의조차 못하게 한다면 집단이기주의로 밖에 볼 수 없다”며 “교육당국도 다음 정권에서 뒤집히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추진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도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면서 교사들을 교사자격증 소지자로 한정하라는 말은 하지 말자는 말과 같다”며 “교수법·학생평가 등 꼭 필요한 교직과정을 간단히 이수하면 해당 분야 전문가도 기간제 교사로 근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