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데이터로 상환능력 검증'이 답이지만…개인정보 보호가 발목”

by정민주 기자
2026.05.06 06:00:04

‘잔인한 금융’ 만든 신용평가제 대수술 전문가들 해법은
전체적으로 신용점수 상향되는 대안신용평가 거론됐지만
통신비·전기세·월세 기록 오픈해야
신용평가 개선, 사회적 합의가 먼저
제도 유지하고 포용금융 확대 의견도

[이데일리 정민주 김나경 기자] 대학을 졸업한 뒤 창업을 준비중인 30대 A씨는 창업 아이디어를 토대로 은행 문을 두드렸지만, 거절되기 일쑤였다. 기존의 대출 이력이 없는데다, 아이디어 만으론 대출을 해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몇년간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하고 유학을 가기로 결심한 B씨는 은행으로부터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직업이 없으니 금리가 연 1%포인트 오른다는 내용이었다. B씨는“보유한 주택도 있는데, 신용대출 금리를 바로 올린다고 하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우리나라 금융 신용평가 체계가 대출상환이력, 직업, 연소득 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신용 정보가 부족하거나 신용점수가 낮은 저신용자의 제도권 진입을 사실상 막고 있다는 지적이 일자, 금융당국이 대대적인 손질에 나섰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소셜믹스에 올린 글에서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제도는 불완전한 과학이며, 금융이 설계한 보이지 않는 계급장”이라고 비판하며 이재명 대통령이 제기한 ‘잔인한 금융’을 이슈화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의 신용평가제도는 금융거래 실적이 적은 주부나 학생, 고령층 등 신파일러(Thin Filer)에 불리한 구조다. 신용평가체계가 ‘개인 상환 가능성’을 평가하는 게 기본 틀이어서다.

해결 방법으로는 ‘대안신용평가’가 거론돼 왔다. 상환 여력을 우선시한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다른 데이터로 검증해보자는 것이었다. 정기적으로 나가는 통신비, 전기세 등이나 월세 납부 기록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대안신용평가를 쓰면 전체적으로 신용점수가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면서 “신용 시스템 바깥에 있던 5% 정도가 제도권으로 추가 유입되는 것이 미국 데이터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사회적 합의가 된다면 신용평가방식을 손질하고 보완하는 것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며 “데이터를 발굴하는 은행의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지금도 인터넷은행, 핀테크에서는 이를 활용하고 있지만, 보다 많은 데이터 발굴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문제는 개인정보보호라는 제약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대안신용평가를 나름대로 하는 곳이 있지만 정보가 묶여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어 정부가 육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 학회장도 개인정보보호를 꼬집으며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보는가의 차원인데 우리나라는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공공기관 데이터를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면서 “중국에서는 서부 사막에 사는 농부가 대출을 신청한다고 하면 이 사람의 개인정보와 직종 등 20만개 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가공해 대출 여부와 금리 수준을 적용한다”고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대안신용평가가 시장원리를 흔드는 수준이 돼서는 안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최철 숙명대 소비자경제학부 교수는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방향은 타당하지만 신용위험에 따른 금리 결정이라는 시장 원리를 해치지 않으면서 이를 구현할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것이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현재의 신용점수평가 체계를 바꾸려면 그 사람의 미래성장성까지 책정해야 한다”며 “기술력 기반으로 미래성장성 책정하는 기업의 생산적금융도 어려운데 가계를 대상으로 하는 건 더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업계와 학계전문가들은 신용평가제 재설계보다는 포용금융 확대를 현실적 대안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과 교수는 “데이터가 과거만 반영을 한다는 것도 원론적인 문제 제기이고, 결과적으로 포용금융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정책실장의 메시지”라며 “금융당국도 건전성을 위주로 감독했지 포용금융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본인도 반성을 한다고 했고, 그러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이 ‘잔인한 금리’라고 지적한 정책서민금융상품 불법사금융예방대출(옛 소액생계비대출)은 지난해 8월 연체율이 35.7%까지 높아져 건전성·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민간까지 확대하기는 어렵다는 평을 받았다.

이에 금융업계에서는 과거 김용범 실장의 발언, 정책방향을 분석하면서 포용금융을 더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김용범 실장은 2017년 8월 금융위 부위원장 시절 “현재 은행의 담보대출 구조는 자산가격 변동 위험을 과도하게 차입자에게 전가시키고, 자산가격의 하락과 경기불황의 피해는 서민·취약계층에 집중돼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킨다”며 “민간에서 연체자의 재기지원 등 사회적 배려가 금융의 중요한 가치라는 인식 전환이 일어날 수 있도록 법·제도적 인센티브가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김 실장은 사회적 가치와 재무 수익률을 동시에 추구하는 ‘임팩트 금융’ 등을 언급했었다. 주택·사회복지·교육 등 사업분야에 투자해 매년 수백억원의 수익을 내는 영국 자선은행, 네덜란드 트리오도스 은행 등의 사례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