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건 자식뿐"…재계, '오너 경영' 안정화 주력

by이재호 기자
2015.12.06 16:39:55

30~40대 젊은 경영인 임원 대열 합류
경영여건 악화·기존 오너 노쇠화 영향

올해 정기 인사를 통해 임원 승진에 성공한 오너 경영인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 허준홍 GS칼텍스 전무, 허윤홍 GS건설 전무, 이규호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보, 박태영 하이트진로 부사장. 각사 제공
[이데일리 이재호 기자] 국내 주요 기업들의 연말 인사가 속속 마무리되고 있다. 올해 인사의 특징은 30~40대 젊은 오너 경영인들의 약진이다.

불황의 그늘이 깊어지면서 미래가 불확실해진 데다 전 세대 오너들의 노령화까지 겹치면서 안정적인 경영 체제 구축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화(000880)는 6일 실시한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2) 한화큐셀 상무를 전무로 승진 임명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7일에는 현대중공업(009540)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33)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다. 이달 1일에는 허만정 GS(078930) 창업 회장의 장손인 허준홍(40) GS칼텍스 상무와 허창수 회장의 외아들인 허윤홍(36) GS건설(006360) 상무가 전무 승진 대상에 포함됐다.

2일에는 이웅열 코오롱(002020) 회장의 장남인 이규호(31) 코오롱인더(120110)스트리 부장이 상무보로 승진하면서 임원 대열에 합류했다. 이튿날인 3일에는 정유경(43) 신세계(004170) 부사장과 박태영(37) 하이트진로(000080) 전무가 각각 사장과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3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까지의 젊은 오너들이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이다. 김동관 전무와 정기선 전무는 상무가 된 지 1년 만에 전무로 뛰어올랐다. 해당 직급의 최소 승진 연한이 3~4년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이같은 초고속 승진은 경영권을 안정시키려는 전 세대 오너들의 의지가 작용한 결과다. 김승연 회장은 장기 투옥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했고 정몽준 이사장은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직 도전에 실패한 뒤 일각에서 제기된 경영 복귀설을 일축했다. 다른 기업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지속하는 등 녹록치 않은 경영 환경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리더십 구축이 절실한 시점이다.

파격 승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한화는 김동관 전무의 승진 이유로 태양광 사업의 성공을 제시했다. 정기선 전무의 사내 직함은 기획·재무 및 조선·해양영업총괄부문장이다. 최근 아람코와의 업무 제휴를 진두지휘하는 등 경영 전반을 챙기고 있다. 코오롱은 입사 후 3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한 이규호 상무보에 대해 직원들과 적극 소통하는 현장형 리더라는 수식을 붙였다.

올해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오너 경영인들도 보직 변경을 통해 요직으로 이동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42) 삼성물산(028260) 사장은 신임 패션부문장이 됐다. 윤주화 사장이 떠나면서 삼성물산의 패션 사업을 오롯이 이끌게 된 것이다.

박용만 두산(000150) 회장의 장남인 박서원(36) 오리콤 부사장은 지난달 23일 인사를 통해 두산 면세점전략담당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두산이 차세대 먹거리로 육성 중인 면세점 사업을 이끄는 중책을 맡았다. 한화생명(088350)은 지난 1일 김승연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30) 부장을 전사혁신실 부실장으로 임명했다. 전사혁신실은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조직이다. 한화생명이 부실장 직함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재계 인사는 “경영 여건이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기존 오너들의 노쇠화도 진행 중”이라며 “이른 시일 내에 자녀들이 안정적인 경영 체제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