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좌동욱 기자
2008.06.18 15:42:57
5년간 20조원 감세,,고유가 대책으로 감세재원 '뚝'
강부자 파동으로 부동산 세제개편 '올스톱'
[이데일리 좌동욱기자] 쇠고기 파동 등으로 민심이 대거 이탈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려던 '감세정책'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다.
30년이 넘은 '누더기 세제'를 전면 개편하겠다는 방침은 개편안 발표도 전에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정부 조각(組閣)에서 나타난 `강부자`(강남 부동산 부자) 논란으로 중산층 이상의 계층에 혜택을 돌려주는 정책은 '올스톱'되고 있다. 고유가, 물가 대책을 수립하면서 감세 재원을 미리 당겨쓰는 바람에 감세 여력도 줄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월29일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1970년대 이후 부분적인 세율 인하만 이뤄졌다"며 "이르면 가을 정기국회, 늦어도 내년 중에는 근본적인 재정비를 단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재정부는 3월10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넓은 세원, 낮은 세율 체계 구축을 위한 근본적인 세제개편을 검토하겠다"며 9월 정기국회에 개편안을 발표하겠다고 공언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4월말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 재정전략회의에서 "지난해 기준 조세 부담율 22.7%를 앞으로 5년간 20.8%로 2%포인트 가량 줄이자는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GDP를 1000조로 가정하면 5년 후에는 약 20조원(2%포인트) 세금이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재정부는 부가가치세, 소득세, 법인세, 유류세, 재산세(종합부동산세), 특별소비세, 상속증여세 등을 포함한 세목 전반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 왔다. 현행 30개 세목을 통폐합하는 방안도 일부 논의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당시 30개 세목을 15개로 통폐합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 방안은 국세와 지방세를 조정해야 하는 메가톤급 이슈를 포함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총 219개에 이르는 각종 비과세·조세 감면 제도도 재검토 대상. 여기에는 연간 세금 감면 규모가 1조원 이상인 ▲ 농어민 유류세 면제 ▲ 임시투자세액공제 ▲ 농어업용 기자제 부가세 면제 ▲ 신용카드 소득공제 등 대형 조세 감면책도 포함돼 있었다.
이런 비과세 혜택 축소 정책을 감세정책과 패키지로 처리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 재정부 관계자는 "비과세 혜택 축소에 따른 반발을 감세 혜택으로 무마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근본적인 세제개편 작업은 출범 초엔 예상치 못했던 촛불시위나 고유가 파동 등으로 인해 대폭 후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선 '고유가 파동'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세수 감소분이 생겼다.
정부가 지난 8일 발표한 '고유가 극복 종합대책'에 따라 세금을 민간에 환급해 줄 경우 앞으로 7조원 가량의 세수를 풀어야 한다. 이 중 기존에 예산이 이미 배정됐던 화물차, 버스 등 경유 유가보조금 지원금 2조원을 제외하더라도 추가적으로 5조원의 세금이 들어가야 한다.
정부는 또 유류세 10% 인하로 1조3000억원, 긴급 할당관세 인하로 6000억원의 세수가 일시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앞으로 법인세를 5%포인트 인하할 경우 4년간 8조7000억원의 세수가 항구적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추가 감세 여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초과세수 15조원 중 항구적으로 늘어난 세금 7~8조원 가량을 감세 재원으로 활용하겠다(임종룡 재정부 경제정책국장)는 입장을 밝혔으나, 현재 확정된 정부 대책만으로도 이 재원은 고갈됐다.
이희수 재정부 세제실장은 "현재까지 발표된 대책에 따라 줄어드는 세수 감소분이 대략 2008년 2조7000~8000억원, 2009년 5조원 정도"라고 말했다. 이는 올해 감세에 쓰겠다고 계획했던 7조~8조원의 세금이 기 발표한 대책의 재원으로 대부분 책정됐다는 의미라고 재정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현재와 같은 고유가 상황이 지속될 경우 감세 여력이 더욱 떨어진다. 재정부 관계자는 "기존에 발표한 감세 대책 중 유류세 10% 인하, 할당관세 인하, 세금 환급 등은 일시적 조치로 항구적으로 줄어드는 세수 감소분 7조~8조원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가령 올해 초 탄력세율 조정으로 인한 유류세 인하(10%)가 내년, 내후년에도 지속될 경우 항구적 세수 감소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등으로 대통령 지지도가 급락하면서 감세를 추진할 동력도 약화되고 있다. 특히 강부자 내각 파동을 겪으면서 재산세나 상속증여세 등 민감한 세제 개편안들이 대부분 중단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세제개편안에서 종부세율 과세 기준 상향이나 종부세와 재산세(지방세) 통합, 1가구2주택 양도세 부담 완화 등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도 개선책도 검토했지만, 현 상황에서는 보류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도권 집값이 동요할 것이라는 이유와 함께 부자들를 위한 대책이라는 비판을 의식했다.
취·등록세(지방세) 1%포인트 인하도 세율 인하에 따라 줄어드는 지방세를 보전해줄 세수가 없다는 이유로 잠정 보류됐다.
상속증여세의 경우 재계 요청에 따라 자본이득과세로 개편하는 문제를 검토했으나, 이 역시 부유층을 위한 대책이라는 비판 때문에 추진을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속증여세는 재산을 물려받은 시점에서, 자본이득과세는 물려받은 재산을 처분하는 시점에서 과세를 하는 제도로 자본이득과세를 도입할 경우 대기업의 경영권 대물림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비과세·감면제도를 축소하겠다는 방침도 각종 감세 대책들이 무산됨에 따라 실현될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 앞으로 경기가 둔화될 경우 세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세수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경기"라고 말한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벌써부터 재정부 내부에서는 "괜히 '전면적'이라는 수식어를 달아 고민을 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다.
이희수 세제실장은 이런 지적에 대해 "근본적 세제 개편은 재정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추진할 것"이라며 "조세 부담율을 낮추겠다는 정부 방침도 올해 한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5년간 단계적으로 낮추겠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설명은 올해 초 방침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재정 여건'과 '단계적'이라는 표현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