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동석 기자
2008.01.11 17:24:15
[이데일리 박동석기자]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체결을 위한 두 나라간 막판 줄다리기가 한창이던 지난 2002년 10월 어느날 아침.
당시 전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현 감사원장)은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과 김동태 농림부 장관을 은행회관으로 초대했다.
전 부총리가 두 장관을 초대한 이유는 `고생하니 맛있는 아침이나 먹자`였지만, 속
으로는 ``한-칠레 FTA 체결을 놓고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산자부와 농림부와 담판을 짓기 위해서였다. 식사하는 동안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전 부총리 특유의 은근한 유머에 아침 테이블은 웃음꽃으로 만발했다.
드디어 식사가 끝나고. 전 부총리는 한-칠레 FTA 협정 체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할 문서를 식탁위에 꺼내놨다. 산자부와 농림부의 이견을 조정한 재정경제부 안(案)이었다.
그러자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싹 사라지고 험악하게 돌변했다.
신 장관과 김 장관이 `서로 양보할 수 없다`며 목청을 높이기 시작해서다. 그렇게 시작된 두 장관 간의 싸움은 3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산자부는 자동차, 휴대폰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농림부는 시장이 열리면 사과,배,포도 농가가 폭삭 망할 것이기 때문에 쉽게 하면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두 장관의 싸움을 보다못한 전 부총리는 손으로 식탁을 쾅 내리치며 "그럼 어쩌란 말이냐. 알아서하라"고 버럭 화를 낸 뒤 식당을 박차고 나왔다. 별명이 `전핏대`인 전 부총리의 입에서는 거의 육두문자에 가까운 질타가 터져나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든 한-칠레 FTA체결을 성사시켜보려는 전 부총리의 전략이었다. 작전은 성공. 신 장관이 먼저 `왜 그러시느냐`며 따라나왔고, 김 장관도 잔뜩 화가 난 전 부총리 옆으로 다가왔다.
평행선을 긋던 두 부처간 대립은 이렇게 해결이 됐고 우리나라는 며칠 후인 2002년10월24일 역사적인 한-칠레 FTA협정에 서명했다. 협상을 시작한 지 무려 3년여만이었다. 한-칠레 FTA는 그때까지만 해도 국제 통상의 미아(迷兒)였던 우리나라가 맺은 첫 FTA로 한-미 FTA를 위한 전초전의 의미를 가졌었다.
이 숨겨진 일화는 정부 부처간의 이견을 조정하고 거시경제와 현안을 이끌어가는 `경제 콘트롤 타워`로서의 경제부총리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
새 정부가 정부 조직 개편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작은정부를 지향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의중에 따라 경제, 과학기술, 교육 부총리 3자리를 모두 없애고 부처도 15개 정도로 줄이기 위한 막판 진통이다.
작은 정부는 참여정부들어 각종 위원회다 뭐다 해서 일이 안될 정도로 비대해진 정부를 기능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점에서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 글로벌 스탠더드와도 부합된다.
그러나 조직을 아무리 슬림화한다고 해도 경제대통령을 자처하는 이 당선자가 경제부총리자리까지 없앤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경제는 청와대에 경제수석을 두고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는 복안이지만 그렇게 할 경우 대내외적으로 잔뜩 쌓인 불확실성을 대통령이 혼자 감당하기엔 벅찰 게 자명한 사실이다.
경제수석이 조정자 역할 내지 정부 부처와 대통령과의 중간 역할을 한다고 해도 그 책임은 대통령에게 직접 돌아갈 수밖에 없어서다.
더구나 경제 주체간, 부처간 이해가 나날이 첨예해지는 경제문제를 똑같은 장관입장에서 조율하고 이끌어나가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쌀 값이 올라가면 농민은 좋지만 서민 생활은 고달퍼지고, 임금이 올라가면 직장인들은 웃지만 기업들은 울어야 한다. 금리가 오르면 물가는 잡히지만 서민 대출자들의 한숨은 더 깊어진다. 모두가 먹고 사는 문제지만 고차원 방정식과 같이 풀기 어려운 경제정책을 예술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게 경제 장관자리다.
그에게는 경제콘트롤 타워에 걸맞는 힘이 필요하다. 다른 곳은 몰라도 경제부총리 자리는 그대로 유지해 실타래같이 복잡하게 꼬인 경제문제를 매끄럽게 풀고 경제 부처간 조정자 역할을 맡기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칠레 FTA 문제도 부처간 이견 조율을 통상교섭본부장에게만 맡겨놨다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았을 터다. 경제대통령 이 당선자의 결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