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60%가 같은 가격표'..제주도 기름값의 비밀
by성문재 기자
2015.02.03 11:06:14
제주 주유소 대부분 "휘 1390원 경 1210원"
기름값 예민한 도민..알뜰주유소 가격에 수렴
정유사·주유소, 최소 마진 방어..대리점만 수익
[이데일리 성문재 기자] 제주도 내 주유소 10곳 중 6곳은 1원의 오차도 없이 휘발유 1390원, 경유 1210원의 가격을 내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K에너지(096770), GS칼텍스, 에쓰오일(S-OIL(010950)), 현대오일뱅크 등 4대 정유사는 물론 알뜰주유소, 자가상표 주유소 등 다양한 공급처가 혼재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내건 가격표가 마지막 한자리까지 정확히 일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 유가 하락으로 전국 주유소의 석유제품 판매가격이 덩달아 하락하며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전국 어느 곳에서도 특정 가격에 절반 이상의 주유소가 몰려있는 경우는 없다.
예를 들어 서울의 경우 45%(266곳)의 주유소가 휘발유 기준 1300원대에 포진해있지만 1원까지 일치하는 주유소는 많아야 30곳(약 11%) 정도다. 그것도 1300원대라는 상징성을 갖기 위해 1398원의 가격을 내놓아 생긴 일이고 그 주유소들 가운데서도 경유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2일 오후 3시 기준 가격정보가 입력된 제주도 주유소 총 195개 중 123개(63.1%)가 휘발유를 ℓ당 1390원에 팔고 있다. 경유의 경우 ℓ당 1210원에 판매하는 주유소가 57.9%인 113곳으로 나타났다. 마치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절반 이상의 주유소들이 같은 가격을 내걸고 있다.
| 제주도 내 여러 주유소들이 2일 휘발유 1390원, 경유 1210원의 가격을 게시하고 영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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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제주도 주유소 시장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제주도는 전국 17개 광역 시·도 중 유일한 섬 지역이다.
주유소협회 제주도지회 관계자는 “도내 소비자들은 기름값에 대해 민감하다”며 “게다가 도로 사정이 양호해 주변 주유소들이 가격을 조정하면 그 가격을 따라서 맞추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 내에는 농사나 운전을 업으로 삼고 있는 주유 고객이 많아 도시 직장인 보다 기름 가격 변화에 더 민감한 편인데다 도로가 잘 뚫려 있고 교통량이 많지 않아 인근 주유소로 이동해 주유하기가 쉽다는 설명이다.
한 주유소 관계자는 “오죽하면 주유기를 끼웠다가도 가격표를 보고 (주변보다 비싸면) 주유기를 빼달라고 하고 가는 고객이 있을 정도”라며 “정유사 폴을 달고 있는 주유소들은 ‘알뜰(농협)가격 판매’ 등의 플래카드를 내걸고 손님을 끌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해 알뜰주유소가 제주도에 속속 들어서면서 더욱 두드러 가격의 하향평준화를 주도하고 있다. 현재 제주도 195개 주유소 중 알뜰주유소는 35곳(17.9%)으로 제주도의 기름값을 내리는데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석유공사와 농협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기름을 공급받는 알뜰주유소가 제주도 내 석유제품 판매가격을 낮췄고 이것이 기준 가격이 된 것이다. 서울 다음으로 기름값이 비싼 지역이던 제주도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구광역시에 이어 기름값이 가장 저렴한 지역에 오른 이유다.
소매 판매가격은 가장 저렴한 지역 중 한 곳이지만 도매 공급가격은 운송비용 등의 영향으로 여전히 높은 것 또한 업계가 제주도 주유소 시장을 놓고 고민하는 점이다.
정유사로서는 화물차보다 관광용 차량이 많은 제주도 시장은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다. 오히려 배를 이용해 운송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뜰주유소 확산 추세에 맞서 기존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급가격을 덩달아 낮춰야 해 마진은 기대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제주도에서 정유사나 주유소는 돈을 남기기 어렵고 터줏대감 격인 토박이 대리점 3곳만이 이익을 챙기고 있다”며 “육지와는 별도로 진행하는 제주도 내 알뜰주유소 사업자 입찰은 지난해 유찰 끝에 겨우 사업자가 선정되기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