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를 굴리는 사람들]"운용사 안에 자문사 차렸습니다"

by김자영 기자
2011.05.02 11:21:10

엄기요 우리자산운용 전략운용팀장(이사)
A2(AMOLED,2차전지)펀드 만들고, 운용, 마케팅까지
외면하던 KB금융에서 뒤늦게 손 내밀어.."상품신뢰 외부서 먼저"

[이데일리 김자영 기자] 펀드 매니저는 종종 철새에 비유된다. 운용 철학과 펀드에 대한 책임을 뒤로 하고 몸값을 높여 이리저리 옮기는데 급급한 이들이 많아서다.
 
하지만 몸값보다 회사의 운용관(觀)과 그곳에서 펼쳐낼 수 있는 무궁무진함을 먼저 생각하는 매니저도 적지 않다. 괜찮은 펀드를 내놓고 소신있게 운용했을 때 돌아오는 성과의 짜릿함에 무게를 두는 것이다.  
 
엄기요 이사()는 후자에 속한다고 자부하는 이들 중 한 명이다. 

 


엄 이사는 "운용사마다 철학이 있고 그 철학을 좇아 매니저들이 둥지를 튼다"면서 "하지만 운용사가 가장 앞에 두는 철학이 온전히 실현되기란 솔직히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가치투자를 내세우며 만들어진 운용사라고 해도 좀처럼 나지 않는 수익률에 좌절하다가 방식을 달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운용규모가 커지면서 초심을 잃는 운용사도 흔하다.

우리자산운용의 경우 주식과 채권, 리서치를 담당하고 있는 알파운용본부에서 모델포트폴리오를 만들면 그 중 70%를 복제해 장기적으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전략운용팀의 경우 온전히 포트폴리오를 자율적으로 구성한다. 팀내부 리서치와 탐방을 바탕으로 관련기업을 추려내고 종목을 담고 있어, 자유로운 포트폴리오 구성에 대해 사내에서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엄 이사는 "회사안에 나만의 자문사를 차렸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과가 아닌 `꿈의 기울기`가 가파른 종목에 투자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생각에서 나오게 된 펀드가 A2펀드다.

이 펀드는 AMOLED와 2차전지 관련 기업에 투자한다. 코스닥기업까지 총 60개 기업 중 탐방과 리서치를 통해 고르고 또 골라 25개 기업에 대해 압축 투자하고 있다.

엄 이사는 이 펀드를 직접 운용하면서 마케팅에도 나서고 있다. 지금껏 매니저 생활을 해오면서 몸으로 배운 건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는 것이다. 애널리스트를 통해 듣는 기업소개보다, 마케팅팀을 통해 들리는 펀드에 대한 평보다, 직접 눈으로 귀로 확인한 것이 더 중요하더라는 것.

그는 "주식을 사고 파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PB나 기관 프리젠테이션을 하느라 하루가 모자라다"면서 "일이 두배로 늘어난 대신 다른 때보다 얻는 수확도 남다르다"고 뿌듯해했다.

특히 A2펀드는 밖에서 먼저 인정받은 펀드다. 그룹 계열사 은행과 가장 경쟁관계에 있는 KB금융 PB들이 먼저 손을 건네왔다. 사모펀드로 KB금융에서 4호까지 판매 성황을 이루자 우리은행에서도 제안이 왔다.
 
그는 "으레 그룹계열사끼리 무조건 팔아주기때문에 정말 이 상품이 괜찮은 상품인지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 어렵다"면서 "그런 점에서 A2펀드는 객관적으로 상품의 우월성을 인정받았다고 본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수익률도 짭짤하다.



엄기요 이사는 "연초이후 수익률이 4호까지 모두 20%안팎을 기록하고 있다"면서 "법인영업브로커들과 회사내부 직원들도 상품성을 인정하고 상품에 열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1~4호 중 가장 수익률이 좋은 것은 일본지진사태 후 바로 출시된 주식을 담은 3호다.

그는 "이번 일본 사태때도 지난 IMF와 9·11때와 같이 주식자산에는 기회가 될 것으로 봤다"면서 "그 예측이 어김없이 맞았다"고 평가했다.

엄 이사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회사내에 자문사를 차렸다고 생각하고 우리만의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면서 "공모펀드도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업계 최초로 경쟁사에서 공모펀드를 팔아볼 목표도 갖고 있다"고 포부를 내비쳤다.

화제를 돌려 매니저라는 직업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물어봤다.

그는 "직업은 크게 보면 두가지로 볼 수 있다"면서 "100을 뿌리면 그대로 100을 거두는 업이 있고 100을 뿌려서 1000을 거두거나 1000을 잃는 직업이 있다"고 표현했다. 이 가운데 펀드매니저는 100을 뿌려 1000을 얻거나 잃을 수 있는 직업군에 속한다.

즉 펀드매니저는 직업 자체가 레버리지를 갖고 있다는 의미다. 상대적으로 많은 보수만 매력적으로 볼 게 아니라 스트레스에 대한 레버리지를 참아낼 수 있는지 곰곰히 따져보라는 말이다.

매니저로서 그의 목표는 뭘까.

그는 "계속해서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상품을 만들어 많은 일반투자자들이 쉽게 투자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식으로 계속해서 파이팅한다면 자산운용사의 전성기도 다시 오지 않겠냐"며 엄 이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