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얼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by조선일보 기자
2007.12.06 16:11:00
히틀러 찬양곡으로… 베를린 장벽 붕괴 축하곡으로
[조선일보 제공]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합창’은 헨델의 ‘메시아’와 함께 연말 클래식 공연장에서 가장 자주 울려 퍼지는 단골 레퍼토리입니다. 예술의전당의 2005년 집계에 따르면 4년간 송년 음악회에서 ‘합창’은 13차례, ‘메시아’는 10차례 각각 연주되면서 인기 순위 1·2위에 나란히 올랐습니다. “모든 인류가 형제 되리”라고 노래한 실러(Schiller)의 가사와 베토벤 말년 불굴의 의지가 마지막 악장에서 만나고 있기에, 경건하게 한 해를 돌아보는데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합창’의 연주 역사를 돌아보면 이 곡에는 무척이나 다양한 얼굴이 숨어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에는 ‘자유’의 상징이었지요. 그 해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키로프 극장 오케스트라, 런던 심포니, 뉴욕 필하모닉, 파리 오케스트라 등으로 구성된 연합 교향악단과 함께 ‘합창’을 연주하며, 역사적인 베를린 장벽 붕괴를 기념했습니다. 당시 공연에는 실러의 ‘환희의 송가’ 대신에 ‘자유의 송가’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같은 해 11월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반(反)독재 민주화를 부르짖는 ‘벨벳 혁명’이 한창이었습니다. 한 달 뒤인 12월 14일 체코 프라하의 스메타나 홀에서도 체코 필하모닉이 ‘합창’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무대에 올라간 지휘자 바츨라프 노이만(Neumann)과 단원들의 가슴에는 ‘벨벳 혁명’을 지지하는 배지가 달려있었습니다. 연주가 끝난 뒤, 꽃다발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선 사람은 훗날 대통령이 된, 극작가 출신의 민주화 운동가 바츨라프 하벨입니다.
이렇듯 ‘합창’은 민주주의와 동의어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독일 히틀러 집권 당시인 1942년 4월 19일 베를린에서는 ‘총통 각하’의 생일 전야를 축하하기 위해 푸르트벵글러가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당시 음악 역시 ‘합창’이었지요.
음악이 지닌 빛은 하나이겠지만, 시대 상황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아마도 여러 가지 색을 내는가 봅니다. 올해도 어김 없이 ‘합창’이 울려 퍼집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KBS 교향악단, 지휘 오트마 마가, 20일 오후 8시 KBS홀, 21일 예술의전당, (02)781-2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