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 개혁한 행동주의 펀드, 이번엔 유니레버 지분 확대

by고준혁 기자
2022.01.24 11:19:27

트라이언, 유니레버-GSK 인수 좌절 전부터 지분 사들여
펠츠 회장, 2018년 P&G 이사회 들어가 이익 개선시켜
"펠츠, 유니레버 식품 브랜드 팔 수도"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헬스케어 부문을 인수하려다 실패한 소비재 기업인 유니레버가 앞으로도 최고경영자(CEO)의 바람대로 회사를 이끌긴 글렀단 평가가 나온다. 몇 달 전부터 한 유능한 행동주의 헤지펀드 운용사가 유니레버의 지분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운용사는 유니레버의 라이벌인 프록터앤드갬블(P&G) 이사회를 비집고 들어가 회사를 뜯어고친 곳이다.

2017년 CNBC에 출연한 넬슨 펠츠 트라이언 회장. (사진=유튜브 캡쳐)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가 한 익명의 업계 관계자로부터 받은 정보에 따르면 행동주의 헤지펀드 운용사 트라이언(Trian)은 몇 달 전부터 상당 규모의 유니레버 지분을 주기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지분 확대는 유니레버가 연말 GSK 헬스케어 부문 합병 실패 시점보다 먼저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레버는 도브(샤워용품), 헬만(마요네즈), 립톤(차), 메그넘·벤앤제리스(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소비재 업체이고 GSK는 애드빌, 센트륨, 테라플루, 센소다인 치약 등을 파는 헬스케어 업체다.

유니레버의 GSK 헬스케어 사업부 인수 실패는 유니레버 소액주주들의 반발 영향이 컸던 게 이유로 설명된다. 앨런 조프 유니레버 CEO는 업종을 확대하려는 야심을 가졌지만 소액주주들이 ‘하던 거나 잘하라’며 반대 의견을 낸 것이다. 트라이언의 유니레버 지분 확대 시점을 고려하면 소액 주주들의 GSK 인수 반대에도 이 행동주의 헤지펀드 운용사의 입김이 작용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투자 매체 배런스는 “어느 누구도 반기지 않는 인수 시도”라며 “최근 성장성 교착 상태에 빠진 유니레버의 주가 폭락은 ‘GSK는 헬스케어 부문 인수는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시그널”이라고 비판했다.



트라이언은 넬슨 펠츠 회장이 이끌고 있다. 그는 유니레버의 라이벌이기도 한 P&G의 변혁을 이끈 인물이다. 2017년 당시 펠츠 회장은 P&G 지분을 1.5%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최대주주 측과 위임장 대결을 벌인 끝에 1년 후 이사회에 입성했다. 펠츠 회장이 기존 CEO를 내보내고 회사를 장악할 거란 관측도 있었지만, 그가 공격적으로 회사 경영에 개입하려 한 건 오로지 부진했던 P&G 성장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사내 경영진과 협력해 기업 체질을 완전히 바꿔냈다. 마진이 많은 프리미엄 제품에 집중했고, 수익성이 없는 미용 브랜드는 과감히 철수시켰다. P&G의 주가는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기간에도 최근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펠츠 회장은 작년 말 P&G 이사회를 떠났다.

이에 이번 트라이언의 유니레버 지분 확대를 두고 몇몇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들은 성장이 더딘 사업 부문을 과감히 매각하고 핵심 사업에 전념하는 ‘넬츠 스타일’을 재현하기 위해서로 관측했다. 반면 유니레버의 현 조프 CEO의 업종 확장의 꿈은 좌절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제프리스 투자그룹의 마틴 데부 애널리스트는 “트라이언은 유니레버의 우호지분을 모으면서 식품 브랜드를 따로 떼어 내거나 팔라는 압박을 가할 수 있다”며 “이는 동시에 조프 CEO에 부담을 주는 것을 말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