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현대상선 청산 피할수 있나…자율협약후 운명은?
by김도년 기자
2016.04.26 10:30:59
용선료 인하·출자전환 순조롭게 진행되면? ‘산은 주도 합병 가능성’
둘 중 1곳 법정관리 신청하면? 살아남은 곳이 인수합병 가능
둘다 법정관리 신청하면? 양대 해운사 청산…새 플레이어 등장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가면서 국내 양대 해운사의 운명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시장에선 출자전환으로 새롭게 경영권을 쥔 산업은행이 두 해운사를 합병하거나 둘 중 한 곳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이후 살아남는 회사가 부채를 탕감받은 회사를 합병하는 안 등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거론되고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25일 산업은행에 조건부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자율협약 기간 동안 필요한 운영자금 마련안과 용선료 협상, 사채권자 출자전환 등 정상화 방안을 산은 등 10개 채권은행 전체의 동의를 받아야 자율협약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 시장에선 한진해운도 현대상선과 비슷한 3~4개월 동안의 ‘조건부 자율협약’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진해운은 올해말까지 총 1조 5115억원의 차입금 만기가 도래한다. 금융기관 차입금이 4811억원으로 가장 많고 선박금융과 리스가 4207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공모회사채 3166억원, 사모회사채 2932억원으로 구성돼 있다. 당장 6월말 71-2회차 회사채 1900억원에 대한 상환 자금 마련이 필요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가용 현금은 1800억원 수준에 불과한 상황이다.
일단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해외 선주와의 용선료 인하 협상과 사채권자 출자전환 등 채권단 요구 조건을 모두 충족하게 되면 산은 주도의 합병으로 두 해운사가 하나의 해운사로 합쳐지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채권단이 빌려준 돈을 주식으로 바꾸는 출자전환에 나서게 되면 경영권을 사실상 산업은행이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지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산업은행이 두 해운사에 대한 경영 주도권을 갖게 되면서 합병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얼라이언스(해운동맹) 파트너로서의 개별 해운사 체제보다는 합병체가 더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관건은 해외 선주사들과의 용선료 인하 협상, 선박금융과 회사채 등 비협약채권의 출자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이끌어 내더라도 채권단 자율협약이 종료되기 전까지 운영자금을 감당하면서 빠른 시일 안에 결론을 낼 수 있는 지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국내 해운업계에서 해운사 부실을 이유로 용선료 인하 협상에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이스라엘 컨테이너선사인 짐(ZIM)이 지난 2014년 용선료와 채무 재조정에 성공한 사례가 있었지만 이를 조정하는데도 1년 가까이 걸렸다. 선주사와의 협상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회사채 등 기타 비협약채권 처리 문제와 채권단 채무 재조정 등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주들에게 보상 방안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고 선박금융 출자전환 비율과 채무조정 후 지분율 등 구체적인 협상안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선주사들도 용선료 인하에 동의할 가능성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한진해운, 현대상선의 법정관리행(行)으로 용선계약이 파기되면 시장에선 훨씬 낮은 수준의 용선료 계약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약간 내리더라도 두 해운사와의 계약을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다. 사채권자들도 마찬가지다. 법정관리 행으로 회사채 원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없게 될 바에야 주식이라도 받는 것이 낫기 때문에 출자전환에 동의할 가능성이 더 크다.
문제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두 해운사 모두 용선료 인하 협상과 사채권자 출자전환 등에 실패하면 법정관리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만약 둘 중 한 곳이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되면 살아남은 해운사가 법정관리 해운사를 인수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살아남은 곳은 공급과잉 문제가 일부 해소되면서 수익성에 숨통이 트일 수 있고 법정관리에 들어간 해운사는 부채가 탕감되기 때문에 빚 부담이 없는 상황에서 해운사를 인수,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최근 중국계 해운사들이 해운동맹에서 이탈하면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영향력이 크게 줄었기 때문에 시장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해운사 모두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가는 상황도 배제할 순 없다. 용선료 협상과 사채권자 출자전환 등은 모두 미래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는 협상들인데 이 협상에 실패하고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이 파기되면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밖에 없다.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가면 계속기업가치와 청산가치를 따져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텐데 국내 해운사들은 청산가치가 더 높게 나올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간 해운사를 부채 없이 헐값에 인수, 새로운 플레이어들로 해운시장이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최대 변수는 정부 입장이다. 정부는 이날 구조조정 협의체를 구성하고 이 협의체에서 수립된 방향대로 채권단의 구조조정이 추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결국 해운업 구조조정의 키는 정부가 쥐게 된다는 의미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대상선은 회사측이 용선료 인하, 사채권자 채무조정에 성공하면 정상화를 지원하고 실패하면 원칙에 따라 처리할 방침”이라며 “한진해운도 현대상선과 같은 원칙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