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450년] '햄릿'의 변신…대사 반으로 女캐릭터 덧칠
by양승준 기자
2013.12.02 11:28:33
[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2014년 공연계 키워드는 ‘셰익스피어’가 될 전망이다. ‘리어왕’ ‘맥베스’ 등 숱한 명작을 남긴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탄생 450주년이 되는 해라서다. “셰익스피어가 곧 연극이다.” 프랑스 극작가 빅토르 위고의 말처럼 셰익스피어의 영향력은 문학을 뛰어넘어 무대예술에서 절대적이다.
△연출_“일관성 떨어지는 오필리어 등 재해석”
탄생 450주년에 앞서 셰익스피어가 새로 태어난다. 오경택 연출이 12월 무대에 올릴 연극 ‘햄릿’이다. 답습은 없다. 먼저 원작의 대사를 반으로 줄였다. 대신 작품 속 캐릭터의 입체화에 집중했다. 고전에서 잃어버린 이야기 조각들을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했다. 크게 두 가지 질문에서 출발했다. ‘거투르드는 왜 남편의 동생과 재혼했을까’와 ‘오필리어가 갑자기 미친 이유는’이다. 오 연출은 여기에 살을 붙였다.
거투르드는 여자 혹은 어머니로서 사는 데 대한 갈등을 지닌 인물이다. 선왕이 죽자 그의 동생인 클로디어스와 재혼해 아들인 햄릿과의 사이가 더 멀어지는 캐릭터다. 형을 죽이고 왕좌를 차지한 인물과 재혼하고 아들의 불행까지 방관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공감이 어려웠던 부분 중 하나다. 오 연출은 선왕이 과연 좋은 왕이자 남편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새로 던져 거투르드에게 다가갔다.
“당시에는 형수취수제라는 제도가 실제 존재했다, 때문에 거투르드의 선택이 도덕적으로 큰 잘못은 아니었을 거다. 원작에 나와 있듯 전쟁을 즐겼고 그로인해 덴마크에 혼란을 가져온 선왕과의 결혼생활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거트루드는 어머니이기 전에 인간이자 여성으로 자신을 홀대했던 전 남편보다 자상한 클로디어스에게 끌리는 게 자연스러웠을 거다. 이런 다른 해석들이 공연에 담겨 있다.”
이뿐이 아니다. 오필리어의 죽음에 다른 해석도 보여주겠다고 했다. 오 연출은 “‘햄릿’은 학교에서도 많이 다루는데 학생들이 이해는 되지만 공감이 안 되는 지점으로 오필리어가 미치는 장면을 자주 꼽는다”고 했다. 그도 인물의 일관성이 조금 떨어지는 편이라 생각해 왔던 터다. 오 연출은 “거투르드와 오필리어 같은 여성캐릭터들은 문학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인데도 평범하게 그려져 실속이 별로 없었다”며 “인물에 중점을 둔 작품을 만들 생각”이라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요즘 세상이 제 정신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가혹한 것 같다. 그래서 햄릿을 비롯한 다른 인물들처럼 미쳐버리지 않고서는 버텨낼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다.”
△배우_“작품 새로움에 반해” 묵언수행 멈추기도
배우들의 각오도 남다르다. “젖 먹던 힘을 비롯해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모든 힘을 쓰고 있다.” 데뷔 후 처음으로 햄릿 역을 맡은 정보석은 온몸으로 작품과 부딪치고 있다. 신경을 너무 쏟은 나머지 일어서는 것도 불편하다는 정보석은 “정리되거나 의도한 미친 척보다는 그 순간에 정말 미칠 수 있는 한 장면마다 날것의 감정이 드러나는 햄릿을 그릴 것”이라고 했다. 그 원초적인 감정에 다가가기 위해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을 떠올렸다.
정보석은 “현대사에서 가장 부침이 심했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사회·나라를 위해 나서는 친구들에게 미안했던 시기”라며 “그러나 앞에 나서기는 두렵고 그러면서도 가만히 있지는 못하고 꼬리를 따라다니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돌아가서 혼자 있을 때는 그 순간이 창피하고…. 그런 내 모습들에서 햄릿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거투르드 역으로 나서는 서주희는 연기에 회의를 느껴 묵언수행을 하던 중에 ‘햄릿’ 출연 제의를 받고 입을 열었다. 데뷔 24년 차인 서주희는 “배우로서 방황하며 바닥 상태였는데 새로운 ‘햄릿’으로 연극에 대한 애정이 다시 생겼다”며 의미를 뒀다. 클로디어스로 무대에 설 남명렬은 “햄릿의 고뇌를 잘 드러내기 위해서는 주변인물이 살아있어야 한다”며 “이전 ‘햄릿’에서는 보이지 못했던 살아있는 클로디어스를 연기하겠다”고 기대를 당부했다. 12월 4일부터 29일까지 서울 명동 명동예술극장. 164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