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우울한 대한민국, 슬픈 청춘들의 초상

by송이라 기자
2019.05.01 16:42:04

2019 청소년통계…38년째 청소년 줄어 `인구절벽` 예고
10명중 3명, 우울감 느껴…탈출구는 스마트폰 뿐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12년째 여전히 `자살`
다시 늘어난 흡연·음주율…넷중 한명꼴로 비만
절반이상은 "우리 사회는 공정하지 못하다" 느껴

2019 청소년통계(그래픽=여성가족부)
[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나는 17살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기상 후 아침밥을 거른 채 학교에 간다.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나 하며 일과를 마치면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은 과연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까가 아닌,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느냐다.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 온다. 게다가 뉴스에 나오는 우리 사회상을 보고 있노라면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여러 생각을 하다보면 한없이 우울해지는데 자해 인증샷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는 친구들을 보노라면 가끔씩 자해 충동까지 느낀다. 하지만 마음을 터놓고 상담할 사람은 거의 없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가끔 친구들과 집에 모여 부모님 몰래 술을 마시고 담배도 피우는 일탈을 즐긴다.

대한민국은 우울하다. 하루가 머다 하고 조현병 환자들의 사건·사고가 뉴스를 도배하고 자살률은 지난해를 제외한 최근 13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부동의 1위다. 이런 우울한 사회는 청소년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저성장으로 인해 점점 더 좁아지는 취업문, 경쟁에서 탈락하면 도태된다는 압박감으로 청소년들의 마음은 병들어가고 있다. 열명 중 세명이 우울감을 호소한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지난 1일 9~24세 청소년들의 인구, 건강, 학습, 여가 등을 항목별로 조사해 발표한 `2019 청소년 통계` 속 자화상이다.

지난해 중·고등학생 10명 중 3명(27.1%)은 우울감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대비 무려 2%포인트 높아졌다. 우울감 경험률은 최근 12개월 동안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다. 성별로는 여학생의 우울감 경험 비율이 33.6%로 남학생(21.1%)보다 높았으며 성별과 무관하게 학년이 올라갈수록 우울감 경험률이 증가했다. 이처럼 우울한데도 10명 중 1명은 이야기 상대가 필요할 떄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다고 응답했다.

걱정도 많다. 지난해 13세 이상 청소년이 가장 고민하는 문제는 `직업`(30.2%)이었다. `공부`(29.6%)와 `외모`(10.9%)를 앞질렀다. 직업에 대한 고민이 공부를 앞지른 건 1984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이다. 취업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4차산업혁명 등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직업에 대한 고민이 어려서부터 커지고 있는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렇다보니 극단적 선택을 하는 청소년까지 늘고 있다.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는 12년째 자살이다. 인구 10만명당 7.7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럼에도 우울한 청소년들이 상담 대신 선택하는 유일한 탈출구는 스마트폰이다. 실제 인터넷 이용시간은 최근 6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해 지난해 10대 청소년은 하루 평균 2시간 32분, 20대는 3시간 27분간 인터넷을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10명중 3명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과의존위험군에 속했다. 대표 SNS 사이트에는 자해흉터, 자해하는 사람은 나쁜사람이 아닙니다, 자해 글귀 등의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수십만건에 달한다.

청소년들의 건강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지난해 13~24세 청소년 절반만이 아침식사를 했고 적정수면을 유지하는 청소년도 10명중 7명으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반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청소년은 10명중 3.5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중고생의 흡연율과 음주율은 각각 6.7%, 16.9%로 전년 대비 일제히 상승했다. 특히 음주율은 2012년 이후 6년 만에 가장 높았다. 비만율도 꾸준히 증가세다. 지난해 초중고생의 4명중 1명은 비만군에 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3회 이상 패스트푸드를 섭취한 청소년은 21%를 넘어섰다.

지난해부터 확산된 미투운동 등 페미니즘 열풍으로 청소년들의 양성평등의식은 해마다 높아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청소년의 96.2%가 “남자와 여자는 모든 면에서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2013년 91.7%였던 응답 비율은 2016년 93.9%, 2017년 95.5%, 2018년 96.2%로 높아졌다. 특히 남학생의 양성평등의식은 2013년 88.2%에 불과했지만 2016년 91.6%, 2017년 93.3%, 지난해 94.8% 등 여학생보다 상승폭이 더 컸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었다. 2017년 청소년 중 우리사회가 공정한 사회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46.3%에 불과했다. `우리사회가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응답한 비율은 59.6%, `우리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라고 응답한 비율은 61.2%에 그쳤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신뢰도는 더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국가 차원에서도 청소년 인구가 줄면서 인구절벽이 현실화하고 있다. 청소년 인구는 올해 876만5000명으로 지난 1982년 정점을 찍은 후 38년째 감소세다. 특히 초등학교 학령인구 구성비는 1970년 17.7%에서 2019년 5.3%로 30여년새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해 타 연령대보다 큰 감소폭을 보였다. 이에 반해 다문화학생은 최근 6년간 매년 1만 명 이상 증가해 2018년 다문화학생 비중이 2.2%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