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안승찬 기자
2012.03.19 14:50:55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당연한 얘기지만, 사내식당은 직원의 한 끼 식사를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사내식당의 온전한 주인은 그 회사 직원이다. 하지만 삼성과 LG의 사내식당 문화는 서로 좀 다르다.
서울 여의도 LG 쌍둥이빌딩 지하 1층에 있는 사내식당 역시 LG 직원이 주로 이용하는 장소지만, 외부인에게도 개방해 놓았다.
LG 직원임을 증명하는 ID(신분)카드가 없더라도 현금을 내면 누구나 사내식당을 이용할 수 있다. 학생들을 위한 과학관인 'LG사이언스홀'을 방문한 선생님과 아이들이 LG 사내식당에서 식사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기자도 가끔 이곳에서 몇천원을 내고 점심을 때운다.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 지하 2층에도 사내식당이 있지만, 이곳엔 외부인이 없다. 출입을 막는 별도의 장치는 없지만, ID카드가 없으면 식사를 못하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외부 사람들이 드나들면 직원들이 편하게 식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특히 기자는 더욱 접근 금지 대상이다. "직원들끼리 식사하면서 편하게 공유하는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과 LG의 사내식당은 모두 건물에 상주하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위탁급식업' 허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삼성은 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LG는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정보 보안의 관점에서 보면, 삼성의 문화는 수준급이다. 미리 약속해놓아도 외부인이 본사로 들어가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삼성 책임자의 실명을 여러명 대야 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다. 그만큼 정보와 보안에 대한 삼성의 문화는 철두철미하다.
삼성전자가 보안과 관련한 기록을 또 한번 세웠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8일 삼성전자(005930)가 지난해 공정위의 현장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며 4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4억원은 조사방해와 관련해 부과할 수 있는 최고 한도액이다. 4억원의 과태료를 받은 기업은 삼성전자가 처음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3월24일 공정위 조사 공무원 5명이 휴대폰 유통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급습했을 때, "사전 약속을 하지 않으면 담당자가 나와야 출입이 허용된다"며 출입을 막았다. 이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 직원들은 관련 자료를 모두 폐기하고, 대부분 자리를 피했다.
강제조사권이 없는 공정위 현장조사의 한계를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사방해 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직원들은 "잘 대응했다"며 내부에서 칭찬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4억원의 과태료는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담합 과징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공정위 입장에서 삼성은 '상습범'이다. 지난 1998년 이후 공정위의 조사방해 건수는 총 16건으로, 이 중에서 삼성그룹 계열사가 총 7건이다. 삼성전자는 세 차례나 과징금을 받았다.
정보가 곧 돈이 되는 시대에 삼성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문화를 만들어왔다. 또 어느새 세계 1위 IT 기업으로 올라선 삼성 입장에서는 경계해야 할 대상도 누구보다 많다.
하지만 공정위 조사에 대한 조직적 방해는 기업의 정보 보안을 넘어서 있는 범죄 행위다. 담합을 통해 슬그머니 올린 제품 가격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호주머니 속에서 나간다. 담합 행위 조사를 방해하는 것은 앞으로도 불법적 담합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담합 행위가 없었다면 공정위의 조사를 막을 이유가 없다.
지난달 삼성은 초강력 담합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담합 행위에 가담하면 해고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보안에 철두철미한 삼성이지만, 공정위 조사원에게는 "마음대로 조사해도 좋다"며 문을 활짝 열어주는 대범함과 당당함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