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이 시기에`..위키리크스 불똥튄 현대그룹 해명 진땀
by안재만 기자
2011.01.04 14:15:52
"정부에 불만 토로한 적 없다" 연이틀 강조
정부·대북관계 악화 우려한 듯..그룹측 "진의 의심된다"
[이데일리 안재만 기자] 현대그룹(현대상선(011200))이 한 블로거를 통해 알려진 위키리크스 폭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3일과 4일 잇따라 위키리크스 폭로를 인용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반박하는 해명자료를 뿌렸다.
4일은 법원이 현대건설 MOU 효력 유지 가처분 결정을 내리는 날. 현대건설 인수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현대그룹으로선 이런 `풍문`에 신경쓸 만큼 상황이 여유롭지는 않지만 수정본에 최종본까지 다시 보낼 정도로 표현 하나하나에도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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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의 핵심은 크게 2가지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믿지 못하겠다"고 발언했다고 한 것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한국 정부에 불만을 토로했다는 내용.
이외에도 김정일 위원장이 통일부가 아닌 외교통상부가 남북 관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 불평했다는 내용이 있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의 의리를 강조했다는 점 등이 실려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아리랑 미국 공연을 미국인 입맛에 맞게 수정했다는 내용도 있다.
이번 폭로는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국무부의 한국관계 비밀전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 회장이 방북 직후인 2009년 8월25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와 조찬을 함께 하면서 김정일 위원장 면담 결과를 설명했고, 스티븐슨 대사가 이 내용을 사흘 뒤 전문을 작성해 국무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폭로의 출처는 재미교포 유명 블로거 안치용씨가 운영하는 블로그 `시크릿 오브 코리아`. 안씨는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주한 미국대사관발 외교전문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그룹은 이 폭로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특히 현 회장이 현 정부에 불만을 토로했다는 보도가 거짓이라고 강한 어조로 주장했다. 현대그룹측은 "현 회장은 결코 우리 정부에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다"면서 "당시 북측이 다소 유화적이고 우리정부가 강경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했을 뿐이며, 통역상 오류로 진의가 잘못 전달된 것 같다"고 반박했다.
현대그룹은 또 김정일 위원장이 현 회장에게 "중국을 믿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전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대화 내용이 허구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현대그룹은 "위키리크스 폭로라고 알려진 전문을 보면 김정일 위원장이 `한국의 두 대통령은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아직 살아있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있다"면서 "하지만 이는 사실 무근"이라고 지적했다.
그룹측 관계자는 "당시 현 회장과 김정일 위원장이 만난 시점인 2009년 8월16일엔 김대중 대통령이 생존해 있었다"면서 "김정일 위원장이 두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고 언급한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강조했다.
그룹측은 또 "몇가지 사실관계만 보더라도 위키리크스의 전문을 통해 밝혀졌다고 전한 일부 언론의 보도가 사실이 아님이 분명하다"면서 "한 개인 블로거가 전한 내용이 아무런 확인절차 없이 일부 언론에 가감없이 보도됨으로써 심각한 상황이 야기되는 건 우려할만한 사태"라고 역설했다.
현대그룹은 현재 현대건설 인수를 시도하고 있다.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많지만 법원 판결로 반전을 꾀하려는 상황. 일단 채권단의 손을 떠나긴 했지만 은행과 감독당국 등이 연관돼 있는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현정은 회장이 정부에 불만을 토로했다는 내용이 알려지는 것은 그룹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친(親)북 그룹으로 `찍혀 있는` 현 분위기에서 이같은 논란이 더해진다면 관계 개선은 물건너갔다고 봐야한다"면서 "현대건설 인수전만 문제가 아니고, 계속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관계 악화도 부담 요인이다. 발언 내용이 사실이라고 전제했을 때,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발언 내용을 고스란히 `보고`하는 현정은 회장이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올해 금강산 관광 재개를 목표로 하는 현대그룹으로선 분명 불편한 상황이다.
그룹측 관계자는 "말도 안되는 내용이 확대 재생산되고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몹시 억울한 상태"라며 "왜 이 시점에서 이런 보도가 나왔는지가 의심스럽다는 게 그룹의 입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