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지금이 경매로 내집마련 적기"..경매장 몰리는 2030

by하지나 기자
2022.03.27 23:30:00

[돈이 보이는 창]서울남부지법 경매법정 가보니
실거주용 아파트 여전히 인기..젊은층 응찰 눈길
응찰자수·낙찰가율 하락...경쟁 덜해 저가낙찰 기회
현장탐장 통한 시세분석은 필수

[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이번에는 경험 삼아서 나와봤는데 경매를 통해 내집 마련이 목표입니다”(경매법정에서 만난 30대 A씨)

23일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 남부지방법원 112호 경매법정에는 오전 10시가 되자 경매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좌석이 부족해 서서 경매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붐빌 정도는 아니다. 어림잡아 60명 내외다.

법정 앞 게시판에 부착된 매각기일부를 보면서 입찰할 물건이 행여나 변경 및 취하한 것은 없는지 꼼꼼히 챙겨보는 사람들, 법정안에 마련된 컴퓨터 통해 매각 물건 정보를 검색하는 사람들까지 법정 내부는 조용하지만 분주하다. 벌써부터 치열한 눈치싸움이 시작되고 있는 분위기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법정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부쩍 눈길을 끌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된 30대 A씨는 부인과 함께 경매 법정을 찾았다. A씨는 “신혼부부라서 모아둔 돈은 많지 않은데 집값은 많이 올랐고, 아직 자녀가 없고 소득기준도 애매하게 걸려서 신혼부부·생애최초 특별공급도 쉽지 않다”면서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매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A씨가 응찰에 참여한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세양청마루 아파트(전용 85㎡)의 경우 16명이 몰리면서 최고 응찰자수를 기록했다. 최근 경매 시장 열기가 식었다고 하지만 실거주 수요자가 몰리는 아파트의 인기는 여전했다.

오전 11시10분 집행관이 입찰 마감시각을 알렸다. 이윽고 각 물건별로 응찰자들을 불러내 최고가를 써낸 낙찰자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날 단연 관심이 집중됐던 물건은 최다 응찰자가 몰린 세양청마루 아파트였다. 해당 아파트는 감정평가금액이 5억7500만원에 불과했다. 2018년 감정평가가 이뤄진 탓이다.

낙찰금액은 9억8872만원이었다. 낙찰가율(최저입찰가 대비 낙찰가)은 171%에 달한다. 6억~7억원대 가격을 써낸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9억원이 넘는 금액이 발표되자 법정 여기저기서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물건을 낙찰 받은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있는 36세 남성 B씨다. 여자친구 대신 입찰에 참여한 그는 “신혼집으로 실거주할 생각으로 경매에 참여하게 됐다”면서 “바로 앞에 목동 11단지가 있어서 재건축 기대감도 있고 신정차량기지 이전 이슈도 있어서 투자가치도 충분히 높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낮은 최저입찰가를 의식하지 않고 시세를 감안한 적정 입찰가를 적어낸 것이 ‘신의 한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세보다 최소 1억원 가량 저렴하다. 현재 이 아파트는 동일한 평형대가 지난해 11월 11억원에 실거래된 바 있다.



이날 경매에 나온 35건의 물건 중 낙찰된 것은 총 12건이었다. 낙찰률은 34% 수준에 그쳤다. 해당 아파트를 제외하면 다른 물건의 경우 응찰자는 1~2명에 그쳤다. 빌라 매물도 큰 인기가 없었다. 빌라(다세대) 25건 중 5건만 낙찰됐다. 대다수는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지난해 9월 107.6%까지 치솟았던 전국 아파트 낙찰가율은 올해 들어 100%를 밑돌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응찰자 수와 낙찰률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2월 전국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1206건으로 이 중 629건이 낙찰됐다. 낙찰률은 52.2%이다. 지난해 12월 42.7%까지 떨어졌다가 3개월 연속 상승하며 회복세를 띄고 있다. 평균 응찰자 수도 6.4명으로 지난해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던 12월(5.1명)보다는 늘어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낙찰률 상승에 대해 경매 참여자들이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보고 있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낙찰가율만 본다면 여전히 시장 분위기는 침체돼 있다”면서 “다만 응찰자수와 낙찰률이 올라갔다는 것은 기존에 유찰됐던 물건들에 대한 저가 매수 관심은 있다는 것이다. 대출 규제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경매에 대한 관심이 한풀 꺾였을 때 내집 마련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경쟁도 심하지 않고 낙찰가율도 떨어져서 저렴한 가격에 낙찰받을 수 있는 적기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법원경매 감정가는 거래사례비교법으로 산정되기 때문에 주변 시세를 반영하지만 대부분 감정평가 이후 매각공고까지 짧으면 7~8개월, 1년 이상 걸린다. 그러다보니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대로 매물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특히 유찰될 때마다 최저매각가격이 20~30%씩 떨어진다.

투자자의 경우 주택에 비해 대출이나 세금 규제 부담이 적은 상업용 부동산도 대안으로 고려해볼 만하다. 금리인상과 코로나19에 따른 공실 등 임대수익 저하 우려가 커지면서 올해 들어 상가 경매도 많이 위축됐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2월 서울 상가시설 낙찰가율은 64.7%로 전월(89.5%)보다 24.8%포인트나 하락했다. 이는 2019년 1월(47.0%) 이후 37개월만에 최저치다.

하지만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있는 등 안정적인 배후 수요가 있거나 개발 호재 등 가치 상승이 기대되는 물건의 경우 낙찰가율이 100%를 넘는 사례도 있다. 지난 15일 서울 남부지방법원에서 낙찰된 영등포구 당산동4가에 위치한 근린주택은 최저입찰가 31억4000만원의 136%인 42억7145만원에 매각됐다. 지난달 15일 서울서부지법에서 경매가 진행된 마포구 상암동 상암월드컵8단지 아파트상가 1층 36㎡도 감정가(3억8400만원)의 124% 수준인 4억7780만원에 낙찰됐다.

다만 요즘처럼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자칫 시세보다 높은 감정가가 나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발품을 파는 것이 중요하다. 직접 해당 지역을 방문해서 시세와 분위기 등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경매는 권리분석만큼 중요한 것이 미래가치를 제대로 판단하는 것”이라면서 “현장탐방을 통한 전월세 및 매매 시세 등을 기초로 적정 입찰가를 쓰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