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차기 피해女가 겁내는 보복범죄, 현실서 판친다
by전재욱 기자
2023.06.13 13:20:47
20년 후에 풀려나면 "보복할까 두렵다"는 피해자 호소
실제로 보복범죄 소극 대처해 돌이키지 못한 피해 속출
집행유예, 가석방 풀려나자 피해자 찾아가 칼부림 사례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에게 징역 20년이 선고됐지만, 여전히 피해자는 “나보고 죽으라는 것”이라며 보복을 우려하고 있다. 피해자가 보복 범행으로 다시 피해자가 되는 것은, 그저 우려가 아니라 현실에서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난다.
|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가 지난 12일 가해자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이 끝나고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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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법조계에 따르면, 2019년 5월 충남 서천에서 50대 여성을 살해한 60대 남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성은 남성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하자 경찰에 신고했고, 남성은 스토킹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남성은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이후 여성을 찾아가 흉기로 살해하고 경찰에 쫓겨 도망하다가 분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경찰은 남성이 자신을 신고한 데 앙심을 품고 여성을 보복 살해한 것으로 파악했다. 남성이 집행유예로 석방된 지 2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피해자까지 사망해버리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 비극이었다.
보복 범죄를 마음먹은 가해자는 수십 년이 흘러도 복수의 칼을 접지 않곤 한다. 1994년 살인죄로 무기수가 된 A씨는 20년간 복역하고 2014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때부터 자신을 신고한 B씨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A씨는 2018년 B씨의 집을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하자 B씨의 아들을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쳤다. 살인미수죄로 다시 법정에 선 A씨는 징역 8년을 선고받고 교도소로 향했다.
이렇듯 보복 범죄의 피해는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인과 가족에게까지 번지기에 파장이 크다. 1994년 경기 수원에서 발생한 ‘증인 일가족 살해’ 사건이 대표적이다.
1990년 성범죄를 저질러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은 김경록은 만기 복역하고 출소하고서 증인 C씨를 찾아 나섰다.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C씨가 불리한 증언을 해서 자신이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앙심을 품은 채였다. 결국 김경록은 C씨네 집을 찾아갔지만 찾지 못하자 애먼 C씨의 아들과 친구를 살해했다. 경찰에 쫓기던 김경록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 지난해 5월22일 새벽 부산 부산진구 서면 오피스텔 1층 복도에서 30대 남성 A씨가 귀가하던 20대 피해 여성을 발로 차고 있다.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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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 범행에 대한 법원 입장은 단호하다. 보복을 우려하게 되면, 사건 관계자가 진실에 소극적으로 응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이로써 “형사사건의 실체적 진실 발견 및 국가의 정당한 형벌권 행사를 방해하므로 더욱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는 게 법원의 일관된 견해다.
이런 이유에서 보복 죄는 일반 사건보다 형량이 무거운 편이다. 지난해 5월 부산에서 발생한 협박 사건을 참고할 만하다. 협박 피해자 D씨는 가해자를 경찰에 신고하고서 다시 협박받는 일을 겪었다. 경찰 조사를 받고 풀려난 가해자가 자신을 신고한 데 불만을 품고 D씨를 재차 협박한 것이다. “집이 어딘지 알고 있으니 찾아갈 것”, “당신 집에 사람을 보낼 것” 등 식이었다.
보복 협박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가해자는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가해자가 A씨를 협박한 것을 양형에 불리하게 적용했다. 실제로 대법원 양형 기준을 보면, 보복 목적의 상해·폭행·협박은 일반 사건보다 양형 기준이 높게 설정돼 있다. 보복을 형의 가중 요소로 보는 것이다.
보복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보복에 대한 우려’조차도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지난해 5월 강원 모처에서 발생한 특수 상해 사건을 보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보복할 것이라며 상해와 협박을 동시에 가한 경우였다. 법원은 가해자에게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피해자가 보복당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불리하게 적용했다.
보복 범죄는 예방이 최선이지만, 수사기관과 법원도 적극적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보복을 예상하고서 얼마큼이나 죄를 엄하게 물을지를 가늠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앞서 사례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남성과 가석방으로 풀려난 무기수 탓에 피해자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재차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