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윤진섭 기자
2009.08.24 15:56:30
[이데일리 윤진섭기자] 전세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습니다.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데다 가격마저 오르고 있습니다. 서민들 살림살이가 막막합니다. 정부는 이번 전셋값 급등이 서민 정책을 쏟아내는 기조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안절부절하고 있습니다. 지난 23일에는 전세대책까지 내놨지만 시장의 반응은 '재탕·삼탕·임시방편'이라는 비난 일색입니다. 그렇다면 매년 되풀이되는 전세난을 잡을 수 있는 묘책은 없을까요. 부동산부 윤진섭기자는 충분한 주택공급만이 전세대란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멋진 미술품이 하나 있다고 가정하자. 여러 명의 애호가가 서로 사겠다고 경쟁을 벌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른 변수가 없다면 마지막 사람이 남을 때까지 미술품 가격이 올라갈 게 뻔하다.
시장경제 체제에선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전셋값 급등문제 역시 같은 방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전셋집을 구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전세 물건이 많이 달리는 상황이다. 즉 수요는 많은 데 공급이 부족해 가격이 오른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전세 물량이 왜 갑자기 동맥경화에 빠졌는지에 대해선 정부와 시장의 시각이 엇갈린다. 전셋값 급등현상에 대한 진단이 다른 만큼 처방도 다를 수밖에 없다.
국토해양부는 24일 전월세 동향 및 대책 자료에서 최근 전세가 상승은 작년에 서울 강남의 대규모 입주 여파로 급락했던 전세가격이 현실화되는 측면이 크다고 주장했다. 최근의 전세대란은 이 같은 일시적인 요인에 따른 것으로 주택 수급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전세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것이란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내놓은 전셋값 안정대책은 ▲영세민 근로자 전세자금 대출 확대 ▲오피스텔 85㎡ 이하 바닥난방 허용 ▲도시형 생활주택 기금 지원 ▲중·장기적인 임대주택 확대 등에 그쳤다.
반면 시장 전문가들은 전셋값 급등현상은 상당히 '구조적인' 문제이며, 정부 주택정책의 부작용인 만큼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분양가 상한제 등 정부 규제로 주택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던 게 전세난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밖에 ▲집값 급등으로 매수 대기자들의 매수여력 감소 ▲재건축·재개발 등에 따른 이주 수요 급증 ▲보금자리주택 구입 위해 내집 마련 시기 유예 등이 전셋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결국 시장 전문가들은 전세난은 수요·공급이란 시장원리로 풀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 2000년 이후 서울 입주 물량과 전셋값 동향을 살펴보면 이같은 전문가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12.89%가 오른 서울 전셋값은 2001년 22.03%가 올라 집 없는 서민들을 몸서리치게 했다. 또 2002년에는 14.11%가 올라 전세대란의 여진이 이어졌다.
당시 서울지역 입주물량은 IMF 외환위기 당시 착공 물량이 대폭 줄어들면서 2000년 7만6218가구를 기록한 뒤 2001년 5만8208가구, 2002년 5만1795가구로 급격히 줄었다.
2002년까지 이어지던 전셋값 급등은 2003년 서울 입주물량이 7만8078가구로 늘어나면서 -1.68%를 기록, 안정세를 회복했다. 또 2004년에는 -4.21%를 나타내면서 더 이상의 전세대란은 사라지는 듯했다. 당시 서울 지역 입주 물량은 6만2000가구에 육박했다.
하지만 주택공급 위축을 불러온 8·31 대책이 발표된 뒤 2006년 입주물량이 4만7472가구로 급격히 줄어들면서 그 해 전세가격은 11.60%로 급등했고, 2008년 서울지역 입주물량이 5만4000가구(5만4278가구)선을 회복하면서 전세가격은 -3.09%로 안정세를 보였다.
하지만 올해 서울지역의 8월 말까지 입주 물량이 3만가구(2만9326가구)선에 그치면서 전세대란은 여지없이 찾아왔다. 입주 물량이 부족하면 세입자들은 오피스텔이나 다가구 주택 등 대체 주거로 이동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오피스텔은 바닥난방이 금지되면서 몇 년 전부터 공급이 크게 줄었고, 다가구(원룸)도 공급이 예전만 못했다. 최근의 전세대란은 이 같은 주택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낳은 결과란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혹자는 서울 및 수도권의 주택보급률 100%가 임박한 상황에서 이 같은 주택공급이 자칫 공급과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국토해양부가 내놓은 새로운 주택보급률에 따르면 작년 말 전국 주택보급률은 100.7% 수준. 서울은 93.6%, 경기도는 96.0%로 조사됐다.
이 수치만 보면 서울이나 경기도 모두 외형적으로는 1가구1주택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일부의 주장처럼 공급과잉을 우려할 수준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집에 살고 있는 가구를 따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가구·주택부문)에 따르면 자가 보유 가구는 55.6%에 불과하다. 4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점을 감안해도 자가 보유는 60%가 채 안된다는 게 주택업계의 설명이다.
즉 전 국민의 40%는 집주인이 전셋값을 인상할 경우 좀 더 싼 집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주택업계 한 전문가는 "열 가구 중 네 가구 이상이 전·월세로 살고 있다는 점은 전세대란이 일시적 현상이 아닌 홍수처럼 매년 반복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며 "실수요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아파트의 공급을 크게 확대해 가격 안정을 꾀하는 길만이 전세대란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대책"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정부가 추진 중인 양질의 보금자리주택이 하루빨리 공급돼 집값과 전셋값 안정의 기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